빛 좋은 개찰구

20260405(D+89)_인도/뭄바이

by 박대희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엘로라와 아잔타 석굴을 볼 수 있는 아우랑가바드였다. 다만 문제가 있었으니 우다이푸르에서 아우랑가바드까지 가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기차와 버스는 직행은 고사하고 환승도 한두 번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 서너 차례의 갈아타기가 무탈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총 소요시간은 25시간 남짓. 꽉 채운 하루가 넘어간다. 불과 3주 전 바라나시에서 포카라까지 유사한 경험을 한 우리는 대안이 있는 한 그 과정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한 방법은 뭄바이까지 비행기로 날아가서 기차로 갈아타고 이동하는 안이었다. 이른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은 우리는 10시가 못 되어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차를 한 잔 하는 여유를 부린 후 뭄바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뭄바이 기차역은 주변 건물들과 묶여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겉모습을 자랑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인도스럽지 않은 겉모습에 혹시나 뭄바이는 다를까 하는 기대를 잠시나마 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역사 안에 들어서자마자 스러졌다. 기차역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한 사람들로 꽉꽉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앉아도 되는 곳과 그러면 안 되는 곳을 가리지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난 비좁은 틈으로 각양각색의 짐수레가 오가고 있었다. 기차의 출발과 도착을 알려야 할 전광판은 태반이 고장 난 모습으로 매달려있었는데 더 문제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탑승해야 할 기차는 13시 10분 출발이었지만 13시가 넘어가도록 몇 번 플랫폼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표시되지 않았다.


인도 여행을 시작한 이래 버스나 기차가 나를 놓고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종일관 시달려야 했던 나는 또다시 분주해졌다. 역무원과 역을 지키는 군경 가리지 않고 우리가 타야 할 기차의 행방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대여섯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우리 기차가 들어온다는 플랫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13시 9분. 게다가 내가 들은 플랫폼에는 벌써 기차가 들어와 있었던지라 짐을 챙겨 헐래 벌떡 달려야 했다. 기차는 지금껏 탔던 어떤 기차보다 깨끗해 보였지만 그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다시 한번 고초를 겪어야 했다. 우리가 타야 하는 열차 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매번 2등석이나 3등석을 이용하던 나는 마지막이니 1등석 경험도 한번 해보자며 이름부터 설레는 Executive Class를 예약했다. 그런데 이 열차 칸이 2등 칸 사이에 섞여있을지 어찌 알았겠는가. 길기는 또 엄청나게 긴 인도 기차를 끝부터 끝까지 왕복한 후에야 겨우 우리의 탑승 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아들의 눈썰미가 없었다면 나는 또 지나쳤으리라.


겨우 우리 칸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출발 시간이 지나있었다. 아직 출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했을까. 땀을 뻘뻘 흘리며 언제나 문이 열릴까 기다리는데 안에서 청소하는 이들은 여유가 넘친다. 어차피 늦었으니 천천히 하자는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옆에서 함께 기다리던 인도 사람들이 몇 번씩 기차 문을 잡아당겼지만 열릴 리 없었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그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인 듯했다. 결국 내가 자리에 앉은 시각은 14시가 가까워져 있었고 다시 조금 더 꼼지락 거리던 기차는 출발시간을 1시간 가까이 넘기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번듯한 기차역에서 출발하는 매끈한 기차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은 지나온 인도의 다른 기차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승객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초조해야 했고 열차는 출발도 도착도 약속된 시각을 맞추지 못했다. 하드웨어가 바뀌어도 사회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게다. 그래도 한 달이 넘는 체류기간 동안 처음으로 접한 깨끗한 기차는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탑승 전후의 모든 과정이 엉망일 테니 겉이라도 번드르르한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제 인도에서는 한 번의 기차 여행을 남겨두었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어떤 기차인지 알 수 없지만 바라건대 다시 한번 그럴듯한 모습의 열차가 마지막을 장식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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