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했던 취두부의 기억

20260107(D+1)_타이완/지우펀

by 박대희

예리우 지질 공원과 지우펀 옛 거리를 동시에 둘러보겠다는 생각은 오만에 가까웠을까?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이 상당했다. 버스 이동 시간만 네댓 시간은 족히 되었던 것 같다. 갈아타기도 5번. 구글맵이 없었다면 과연 이 모든 일정이 가능했을까 싶은 하루였다. 넓디넓은 예리우 지질공원에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공원 끝 절벽 정자까지 가느라 진을 뺐고, 여왕의 머리와 사진 한 번 찍겠다고 긴 줄을 감내해야 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지질 공원에서 빠져나왔는데 지우펀에 도착하니 해 질 녘이 다 되어있었다.


날만 좋았다면 귀신같은 스케줄링이었다. 지우펀은 바다와 접한 산자락에 자리 잡아 일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공명이 아닌 다음에야 날씨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해도 지지 않았는데 어둑한 하늘은 보라색으로 물드는 매직 아워를 쉬이 포기하게 했다. 그렇다고 잔뜩 낀 구름이 안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지우펀의 명물인 홍등이 강한 대비를 이루며 빛을 뿌리게 했다. 우리는 홍등이 인도하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고 이내 지우펀의 옛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장엄한 자연(예리우 지질공원)의 한가운데 있다가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재미가 배가됐다. 흥미로운 상점들이 줄을 지어 등장했고 그 상점들을 구경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골목길의 어느 지점에 들어서서야 오늘 하루 가장 잊을 수 없는 감각이 우리를 덮쳤는데, 그건 시각도 청각도 아닌 후각적 자극이었다. 냄새는(누군가에게는 향일지 모르겠다.) 점점 차오르다 어느 시점에 정점에 달했고 그곳에는 취두부를 판매하는 가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음식에 대한 도전 정신이 높지 않다. 편한 것만 먹고 익숙한 것만 즐긴다. 그러면서도 아이에게는 편식하지 말라 하는데 가끔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회사 다닐 때 일이다. 도전적인 식문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술은 즐겼던 나는 선배들의 홍어 회담에 쫓아갔다. 별거 있으랴 하고 베어 문 홍어회에서 나는 세상 접해보지 못한 충격을 받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꽤 길게 느껴진 몇 초간의 고민 끝에 결국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다. 선배는 이게 한 점에 얼마짜린지 아냐며 핀잔을 줬지만 그딴 이야기를 들을 개제가 못되었다. 좁은 골목을 한가득 채우던 취두부의 향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는 코를 막고 걸음을 빨리했고 나는 어른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코는 막지 않고 걸음을 빨리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걸음을 빨리해서 그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애썼는데 냄새는 생각보다 오래 우리를 따라왔다. 멀찌감치 떨어진 식당에서 참기름비빔국수와 소룡포, 볶음밥을 먹고 파르페를 닮은 초콜릿 아이스크림까지 흡입하고 난 뒤에야 우리는 후각적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우펀의 뒷골목은 루프형으로 순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고 하릴없이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 나와야 했다. 게다가 골목 상권이 정점에 이르는 저녁 시간이 되자 이 집, 저 집에서 취두부를 팔기 시작했는지 빠른 걸음 따위로는 피해 갈 수 없을 정도로 골목 가득 향기가 덮쳤다. 우리는 탈출을 포기하고 향긋한 추억을 온몸에 새겼다.


긴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도 많은 음식을 접할 테다. 나는 여전히 음식에 도전적이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예정이다. 아이는 나와 달랐으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희생할 생각은 없다. 함께 취두부를 머금지 못하면서 너만 맛보라는 건 조금 치사해 보인다. 그냥 서로 편한 음식 먹으면서 다녔으면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이 보였다. 아들과 나는 신라면 컵라면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편의점을 걸어 나왔다. 취두부의 기억은 어느새 스러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