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20260110(D+4)_타이완/아리산

by 박대희

아리산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아리산 입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자이라는 도시에서 삼림열차나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두 경우 모두 편도 3시간 가까이 소요된다. 아리산 아래 호텔을 잡고 즐길 생각이 아니라면 하루 이동 시간 6시간을 각오해야 한다. 나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말이 6시간이지 다리도 펴기 힘든 자리에 앉아 구불구불한 산길을 끊임없이 올라가는 건 꽤나 고역이다. 그래도 힘든 일정이 계속되고 있어서인지 교통수단에만 올라타면 잠이 쏟아지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끔 커브가 너무 급해 눈이 떠질 때면 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대단했다. 하지만 잠시뿐 다시 눈이 감기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세계일주를 400일 정도로 잡으면 생각보다 많은 곳을 포기해야 한다. 막상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전 세계를 둘러보기에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그렇다면 아리산은 이렇게 하루를 통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사람마다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수백 년에서 천년이 넘어가는 수령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을 거니는 건 대단한 호사다. 때로는 너무 거대한 나무에 압도되고,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기묘묘한 형상의 나무들도 재미있다. 양념처럼 옆을 스쳐 가는 빨간색 삼림열차도 빼놓지 못할 아리산의 매력이다.


트래킹이 끝나갈 즈음 삼대목이라는 나무를 발견한다. 나와 반대로 트래킹을 즐긴 사람이라면 아마 트래킹 초입에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나무를 마주하면 왜 3대목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끼가 완전히 뒤덮여 나무 본래의 색은 찾아볼 수도 없는 1대목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 위로 나무색은 유지하고 있으나 역시 수명을 다한 듯한 2대목이 기둥을 이루고 있고 2대목 위로 3대목이 무럭무럭 하늘로 뻗어 나가고 있다. 마흔 즈음에 이 나무를 보고 있자니 심경이 자못 복잡하다.


지난 10월 아들과 지리산 종주를 감행했다. 올 3월에 있을 네팔에서의 ABC트래킹 준비를 위함이었는데 결론만 얘기하자면 무사히 잘 끝마쳤다. 그의 나의 12살이 차지 않았고 초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이니 지리산에서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하겠다. 그런데 사실 이 종주는 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아들의 할아버지까지 3대가 함께 하기로 말이 오갔던 프로젝트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건 수년 전이었다. 당시에는 나와 아버지가 함께 지리산을 다니던 때였는데, 중학생 아들과 함께 온 부자 등산객을 스쳐 지나가면서 3대 종주에 대한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을 품었었다.

"우리도 언젠가 아들, 손자, 할아버지가 함께하는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때만 해도 3대 종주의 걱정거리는 손자였다. 그가 과연 이 고된 일정을 견뎌낼 수 있겠는가가 프로젝트 성패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흐른 지난 10월, 할아버지는 프로젝트 참여를 포기했고 손자는 보란 듯이 해냈다. 아이의 성장이 기뻤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헛헛했다. 천년만년 무쇠팔, 무쇠다리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는 건 슬픈 일이다. 아버지와의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자 그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냐며 초연하게 얘기하셨다. 그러나 당연한 이치라고 해서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또한 아들의 입장이다.


아리산의 삼대목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자연의 이치를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여 서글펐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눈앞에 펼쳐놓은 느낌이랄까. 아이는 점점 더 자라날 것이고 아버지는 그와 맞물려 점점 더 약해질 것이다. 나는 그 가운데서 이쪽저쪽 살피다가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게다. 누군가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미혹함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을 보면 옛말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