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여주어야 할 것

20260127(D+21)_캄보디아/프놈펜

by 박대희

프놈펜의 거리는 화려하다. 로열 펠리스를 중심으로 휘황찬란한 건축물들이 거리를 수놓는다. 출발 전 걱정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여행을 계획할 때 프놈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금빛으로 번쩍이는 아름다운 궁전이나 사원이 아니었다. 그건 다음 나라인 태국에서 보아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대신 캄보디아, 그것도 프놈펜에서 꼭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킬링필드였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면 스스로 공부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면 되건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니 그 이상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이해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상대가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각지도 않게 날아드는 질문에도 준비해야 한다. 준비한다고 해서 아이를 완전히 이해시키거나 궁금증을 모두 풀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부모 마음이 최대한 그러고 싶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는 날이면 마음이 편하다. 그저 보고 느끼면 되니까. 하지만 역사적 현장은 다르다. 다만 얼마라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친 여행길에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어제도 인터넷 백과사전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킬링필드에 대해 알아보다 잠이 들었다. 그래도 효과가 있었는지 초반 얼마까지는 그럭저럭 가짜 가이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킬링필드는 크메르 루주라는 집단이 본인들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200만 명을 학살한 장소다. 홀로코스트와 함께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데 특정 집단의 욕심이 얼마나 충격적인 인류 파괴를 야기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다. 킬링필드나 희생자들의 수용소로 쓰였던 뚜얼슬렝 박물관 모두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들 누구 하나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아들도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렸는지 조용히 내 옆에서 거닐며 이것저것을 물었다. 대부분의 질문에 적당한 수준으로 대답하던 중, 한 질문에서 말문이 막혔다.


"아이들은 왜 죽였어?"


킬링필드 현장을 둘러보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복수를 차단하기 위해 죽였단다. 그것도 발목을 잡고 나무에 후려쳐서 말이다. 이 무슨 야만이란 말인가. 현장에는 아이를 내친 나무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는 추모객들이 걸어두고 간 각종 추모품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후세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그뿐이지만 죽음 앞에 섰던 아이들의 공포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후에도 시체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수용소에서는 어떤 행동 강령을 따라야 했는지, 고문 도구와 고문 장면 등 아직 어린 아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무거운 것들만 등장했다. 아들은 오늘은 다른 때 보다 지친다며 쉬었다 가자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지난 20일간 계속 더운 나라에 있었으니 갑자기 무더운 날씨 때문에 힘들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도 오늘 본 것들이 온전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테다.


아빠로서 아들에게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 1년이란 시간은 그러기에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만 보여줄 수는 없다. 때로는 인류가 얼마나 후퇴했었는지 보여줄 수 있어야 그걸 딛고 일어선 인류도 다시 설명할 수 있는 법이니까. 아들을 위해 갑자기 위대한 학자가 되어줄 순 없지만 내가 아는 수준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혹여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감정을 갖는다고 해도 서로의 속내를 들어보고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큰 아이가 많은 세상은 킬링필드 같은 참담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