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8(D+22)_캄보디아/프놈펜
이동일이다. 오늘 자정이면 캄보디아에 들른 진짜 이유, 앙코르와트를 만나기 위해 시앰립으로 간다. 프놈펜에서 챙겨야 할 장소들은 어제 대부분 방문했고 프놈펜 궁만 남겨 놓았었다. 일정이 여유 있으니 체크 아웃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느지막이 객실에서 나왔다. 그래도 호텔 밖을 나선 시각이 12시 전후였고 꼬박 12시간을 무언가로 채워야 했다. 일단은 프놈펜 궁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밖에서 느낀 프놈펜 궁은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니 적어도 두어 시간은 우리의 일정을 채워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궁전은 아쉽게도 절반이 폐쇄되어 있었다. 우리는 1시간을 채 즐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와야 했다. 남은 시간은 11시간이었다. 점심을 먹은 우리는 메콩강이 내려다보이는 카페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와 음료를 주문하고 창가에 앉는 것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도대체 아빠와 아들이 카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각자의 핸드폰을 꺼내 들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게임을 했다. 하지만 투자한 시간에 비해 게임 능력이 출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비행기 게임을 하는 친구들의 현란한 연속 누르기를 부러워했다. 중학교 때는 대전 액션 게임이 유행이었는데 어찌 그리 레버를 유려하게 돌리는지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 친구들이 장풍을 날릴 때 나는 계속 주먹과 발만 내지르고 있었으니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고등학교 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처음 나왔는데 머릿속으로는 대지략가의 전략을 그려도 내 손가락은 졸장 중에도 그런 졸장이 없었다. 결국 나는 친구들이 시키는 단순 노동만 지속적으로 반복했었다.
그렇게 게임에서 점점 멀어졌던 것 같다. 그나마 내가 남에게 내세울만한 수준에 오른 건 한 시대를 풍미한 포켓몬고 정도랄까. 이 게임은 누구도 나에게 손가락의 민첩성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꾸준함만 갖췄다면 얼마든지 남들이 부러워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지쳐갔고 그 후에도 이런저런 게임을 집적거렸지만 오랫동안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아빠였으니 핸드폰 게임에 환장하는 아들이 이해될 리 없었다. 도대체 저 작은 화면에서 펼쳐지는 시시한 놀이에 왜 저리 빠져있을까. 그리고 그 궁금증은 우습게도 프놈펜의 한 카페에서 풀렸다.
모바일 게임의 세상은 놀라웠다. 그야말로 멈출 수 없었다. 몇 종류의 게임을 함께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광고를 봐야 하는 귀찮음도 불사할 정도로 집중했던 나는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사이버 세상에서 빠져나왔다. 아들은 여행을 시작한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아빠의 잔소리 없는 4시간 풀타임 게임이라니. 그에게는 다시없을 천국이었을 것이다. 눈과 어깨가 피로했지만 버스를 타기 위한 대기시간을 채웠다. 눈과 어깨의 피로야 야간 버스에서 풀면 될 일이다.
저녁을 먹기 위해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들은 카페에서의 여운이 남았는지 걸으면서도 게임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여느 때처럼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당장 집어넣지 않으면 핸드폰을 잠가버리겠다고 협박하면서. 불현듯 잔소리를 듣고 있는 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아빠도 조금 전까지 나와 함께 즐기지 않았냐고 하면 또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나는 안에서만 했고 너는 밖에서까지 하고 있잖아' 정도의 치사한 변명 정도 가능할까.
여행을 길게 하다 보니 심심치 않게 뜨는 시간이 발생한다. 지금처럼 노트북이라도 켜 놓고 글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 마저도 쉽지 않은 날이 많다. 그럼 나 역시 다시 킬링 타임을 위한 핸드폰 게임에 손이 갈 텐데 모범을 보여야 하는 아빠로서 곤혹스럽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마무리되면 난 다시 게임의 세계로 빠져들 것이다.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도 3시간이 남았다. 아이와 함께 다음 스테이지를 고민할 테고 또 함께 낄낄 거릴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핸드폰을 쥐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또 꼴 보기 싫겠지만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 집에 있는 아이 엄마가 분노할 일이지만 심각하게 사이버 동맹을 고려해봐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