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4(D+29)_태국/아유타야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지향한다. 이 명제가 반드시 옳은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스쳐가는 스릴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들마저도 종국에는 안정적인 상태로 돌아가길 바란다. 사람들은 어느 시점에 안정적인 삶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재산도 많이 모으려 하며, 행복한 가정도 꾸리려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 누구도 안정적인 상태의 삶만을 유지할 수는 없다.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부를 쌓은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하늘은 늘 우리에게 도전적인 과제를 던지고 인간들이 그 과제를 잘 헤쳐나가는지 지켜보는 듯하다.
스스로 이 과제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여행이다. 안정적인 상태를 다른 말로 변수가 최소화된 상태라고 한다면, 여행은 수많은 변수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 여행이 짧든지, 혹은 길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낯선 과제와 만나게 된다. 내가 대학시절이나 사회 초년병 때 다니던 여행이 그랬다. 내가 딛는 여행지는 나에게 항상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왔고 나는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렇게 한 번의 여행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남이 봤을 때 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괜히 뿌듯하곤 했다.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한 층 레벨업 된 느낌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래서 여행지에서의 변수는 아프지만 짜릿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아무 발전도 없을 테니, 다른 한편으로 변수는 발전의 기회이기도 했다. 설사 그 변수를 해결하지 못해도 나는 돌아갈 집이 있었고 그저 돌아가서 복기해 보면 그만이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그랬다. 그런데 보호자로서의 1년짜리 여행은 변수의 등장이 나를 너무 고단하게 한다.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하고 돌아오면 다음 날 해야 할 무언가를 계획해야 하고, 나의 기록들을 정리하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빠듯하다. 여기에 해결해야 할 다른 과제가 나를 괴롭히면 이때부터는 조금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다.
요 며칠 연속으로 인도가 속을 썩이고 있다. 한 번은 내가 예약한 객실을 취소해 버리더니, 엊그제는 비행기 일정이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런 경우는 몇 번 있었어서 잘해야 30분 빨라지거나 늦어졌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루가 밀린 것이다. 내가 예약한 당일은 항공을 운항하지 않겠다나. 그럴 거면 왜 예약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난 또 이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그마저도 사흘 안에 안 하면 무료 환불의 기회마저 날아가게 생겼으니 미룰 수도 없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늘 묵은 숙소는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았다. 지난 한 달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하필 오늘이다. 세상일이 이렇다.
겨우 비행기표를 정리하고 나니 취소된 숙소도 걱정이다. 우선 그건 4월 문제니 뒷전으로 미루고 침대에 누웠다. 쉽게 생각하고 벌인 일은 아니었지만 세상이 도와주지 않는 건 야속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진 않지만 방해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오늘 같은 일이 계속 생기면 지칠 것 같아 두렵다. 앞으로 일주일 후면 내가 생각하는 이 여행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스리랑카에서 시작해 인도, 네팔, 아프리카 대륙을 거치는 약 100여 일간의 대장정이 시작될 것이다. 모두 내가 한 번도 밟아 보지 못한 곳들이다.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의 발전 따위는 기대하지 않을 테니 제발 변수 따위는 없는 여정이 되길 기도한다. 적어도 이 100일간은 내가 예상한 상수의 연속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