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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 제니 Jul 09. 2021

70대 최여사 달래기

언니 D네 가족이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단 소식을 들은 최여사는 대뜸 뿔이 났다.

"그놈의 제주도는 자주도 가! 평생 여행 한번 안 가본 아비 모시고 드라이브 한번 갈 생각은 안 하고!


최여사는 평생을 일만 하며 사느라 여행 한번 안 가보신 아버지를 내세워 서운함을 토로했다. 최여사의 서운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언니 D는 효녀다. 우리 오 남매 중 가장 부모님께 신경을 많이 쓰고, 도와주려 애를 쓴다. 최여사 역시 알고, 그런 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지만 괜히 내 앞에서만 서운한 감정을 내비치며 투정을 부린다.


"엄마, 엄마랑 아빠가 여행 못 다녔던걸 왜 자식들이 모시고 다니길 바라? 물론 부모 모시고 여행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면 좋지~ 근데 못 그런다고 자식을 탓하면 안 돼."


즉시 반발하며 불똥이 튈 줄 알았는데 최여사는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 나의 뇌는 '입 바른 소리 그만해라' 라지만 한번 터진 입은 명령을 거부하고 조잘댔다.


"내가 항상 말하지? 자식한테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고 살면 안 된다니까? 젊었을 때 먹고 싶은 거 안 먹고, 사고 싶은 거 못 사면서 희생했던 부모들이 꼭 나중에 나이 들어서 자식한테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 하면서 보상을 바라게 된다니까? 그러니까 자식들 적당히 키우고 나면 알아서들 살라고 하고, 악착같이 노후를 위해서 모으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면서 살아야 해. 자식들도 그걸 더 바란다니까?"


그리고 때 마침(하필), 산책 나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저 신문배달 밖에 모르는 영감탱이랑 둘이 뭘 해!!! 짜장면 하나도 나가서 사 먹을 줄도 모르고!! 평생 신문밖에 몰라!! 유도리없이 꽉 막혀가지고!!!"


아차, 최여사의 불똥이 아버지에게 튀었다. 아버지는 능수능란하게 못 들은 척 우리 집 최고 상전인 대박이(반려견) 이름을 연신 부르시며 얼른 방으로 들어가 대박이와 장난치며 까르르 웃으신다.

아버지는 다혈질인 최여사를 다 받아주시는 보살 같은 분이시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이지만 항상 한 푼도 빼지 않고 봉투째 모두 아내에게 건네는 착한 남편이다. 하지만 여자 입장에서의 아버지는 멋없고, 재미없는 남자는 분명하다. 통 큰 최여사에 비해서 소심한 성격이라 최여사에게 아버지는 늘 답답한 사람이다. 성실하고, 아내와 가정밖에 모르는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최여사가 아버지에게 불만인 이유는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사연이 있지만 사소한 것만 말해보자면 아내의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본인의 생일은 손꼽아 기다리시는 분이며, 먹을 게 없으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여 자식들을 먹이려는 최여사와 반대로 아버지는 없으면 굶어야지! 주의인 정말 꽉 막히신 분이다. 나는 항상 아버지는 과연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실까? 하는 의문도 들고, 평생을 일만 하며 사셔서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려고 조차 안 하시는 분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자식들이 여행 데려가지 않는 설움에 남편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진 우리 최여사 기분을 어찌 풀어줘야 하나~ 시답잖은 농담 몇 개를 머릿속에서 굴려본다. 욱하는 성질도 있지만 기분파인 최여사를 달래는 것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엄마, 김치찌개 맛있네!! 이번에 한 김치로 한 거야?"

"응~"

"역시, 김치가 맛있으니까 찌개 맛이 끝내주는구먼!"

"안 짜?"

"간 딱이야! 완전 맛있게 잘했어!"

"밥 더 줄까~?"


최여사는 음식 칭찬을 해주면 좋아한다. 본인이 자신 있어하는 분야에 대해서 누군가 인정해주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도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김치찌개 칭찬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조만간 최여사가 좋아하는 연어 초밥을 사줘야겠다. 70대 여자 어른이 달래기. 7세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은 뭘까?


그리고 오늘의 반성. 주둥이! 함부로 나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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