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Korean. 저희 아이는 영어로 말하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해서요
강남 8학군 공립초등학교의 1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처음에 가장 지도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학습지도나 학습 태도가 아니라
아이들이 '영어'로만 말하려 하는 것이었다.
영어를 잘한다고 과시하거나 잘난척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심지어 자기가 영어를 쓰는지 한국어을 쓰는지
구분을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학교에서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사용해요
도통 듣지 않는 조언에
꼬일 것만 같은 나의 마음을
실타래처럼 잘 풀어 감정을 눌러담아 쏟아내는 선생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너무나 편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한국어로 자연스레 자기 의견을 말하기까지는
꽤 긴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학부모들도
독서시간에 영어 책을 허락해주는지,
쉬는시간에 영어 사용을 허락해주는지가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습관을 고치는데는 일주일 남짓걸렸고
아무도 2학기가 되서는
영어 혼동 사용을 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영어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대화하는
자신들만의 대화 습관까지는
고쳐지지는 못했다.
(고친다고 표현하기에도 이상하다.
아마 이걸 제지한 것을 싫어하는 학부모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교육 교육과정 상에
영어 교과는 3학년부터 나오고
선행학습 금지법에 따라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을 선행하여
지도할 수 없음은 현재도 변함이 없다.)
딸의 친구 중 한 명도,
새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된 어느 날
엄마에게
"I hate Korean."
이라는 폭탄발언을 했다는 푸념을
들었다.
알파벳 조합보다 복잡한 한글 구조와
받침, 자모음을 그리기(정말로 아이들이 한글을 그리는 듯하다) 싫어하고
영어책만 읽고 싶다고
학교에 영어책 가져가면 안되냐 조른다고 했다.
집에서 한글책 잘 읽어요?
한국에서 이런 질문이 왜 필요한가 의문을 갖겠지만
이 동네에서는 종종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책을 잘 읽느냐?'는 의미도 있지만
'한글책을 자연스럽게 읽느냐?'는 의미도 내포한다.
'한글책을 어느 수준을 보느냐?'는 의미도 함께.
아이들의 성장 과정 전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세종대왕이 노하시겠다며
세상 말세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도
신중히 해야한다.
솔직한 입장으로서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일반유치원을 보낸 이동네 극소수에 포함되는 엄마이자,
공립초등교사인 내가
우리아이는 '한글'만 쓰는 유치원을 나왔는데 한글책'도'
안 읽으면 어쩌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영어책을 친구들 수준만큼 읽지 못하니까)
서로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굳이 나의 교육관이나 아이의 유치원을 밝힐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렇다, 아니다 정확히 대답하지는 않았다.
마땅히 적절한 대답이 번쩍 떠오르지 않아
읽고 싶은 책은 잘 읽는 편이에요
라고 두리뭉실 대답하고 나니
아마도 상대방은 아이가 한글책을 싫어한다는 푸념을
털어놓고 싶었던 모양인지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다.
혹시나 대답이 실례가 되거나
우리 아이는 한글책을 정말 잘 읽는다고 말하면
자랑같기도 하고, 불안감을 조성할까봐
그냥 책 보고싶을 때 본다고 대충 마무리지어 정말 다행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영어를
한글보다 더 편할 수 밖에 없는
심지어 한글을 싫어하는 이런 현상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빠르면 만 2~3세에 어린이집 대신
유아학교나 놀이학교라는 명칭으로 운영되는
사설기관에서
모국어나 한글 동요, 한글 단어 대신
먼저 영어를 접한다.
심지어 그 단어들을 철자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는 것을 숙달하고
정말이지 정확하게 구사한다.
호칭도 단어도 영어로
동요도 서양의 동요를 먼저 접하게 된다.
종종 영어로는 단어를 아는데
한국말로는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갸우뚱거리며 발표를 머뭇거리기도 하고,
아름다운 운율과 미학이 담긴 노랫말의 동요는
난생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으로
초등학교에 와서야 처음 듣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만 3~5세에 놀이학교 다음
대망의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게 된다.
영어유치원이라고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지 않아 영어학원에 가깝다.
영어유치원에서
영미권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스폰지같이 말랑한 아이들의 뇌에
엑셀을 밟은듯 언어와 문화 전반을 습득시킨다.
하루종일 영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환경에서
놀이도 노래도 영어로 하며
보내는 세월이 적어도 1~2년 많게는 5년 이상이니
갑자기 한국말을 쓰는 공립초등학교에 떨어진 아이들에게는
영어가 편한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언제는 한국말을 쓰지 말라더니,
왜 이제와서 한국말만 쓰라고 하는건지 적응하느라
애먹는 아이들도 있다.
종종 학부모 상담을 해보면,
자기는 영어로 말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영어를 못하게 해서
하루종일 말하지 않았다거나
친구들과 놀지 못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영유 3년차
그러니까 영어유치원의 꽃이라는 7세까지 모두 교육받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배움이 느린 몇 몇을 제외하고,
거의 원어민급으로 영어를 구사한다.
정말이지 발음과 문장 구조 어느 하나
흐트러짐없이 고급스러운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들도 많다.
7세 과정을 졸업할 때 이미
미국교과서 기준 3학년, 높게는 5학년 수준의 독해력과
작문 실력을 갖춘다. (어마무시한 7세 고시 수준)
이론적으로 설명이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인풋도 어마어마하고
아웃풋도 어마어마하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런 아이들은 어디 영어유치원을 나왔냐고
알려달라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아웃풋이 굉장하다.
자그마한 아이의 입에서 원어민급의 영어가 쉬지않고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은
정말이지 옛날 영어를 학습한 나에게는 어마어마하게
부러운 광경이다.
주말에 만나 키즈카페에서 함께 놀거나,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영어를 사용하고
서로 영어 이름을 사용하며 성장한다.
(심지어 학기초에 영어 이름으로 이를 때가 있었음)
제이미맘이 화제가 되어
웃으며 넘어갔을지 몰라도
친구 Daisy mom을 만나 학원을 물어보는 것,
Jamie의 영재적 모먼트를 뽐내는 것,
자신의 아들 본명이 '김제득'임에도
화가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의 한글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
이 동네 카페에서 종종 들려오는 엄마들의 말투와 대화가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냥 일상적인 대화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영미권 언어를 모국어보다 먼저 사용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구사와 문화 흡수라는 큰 장점과 함께
이면의 단점도 가지게 된다.
먼저, 장점으로는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는 밑거름이자,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생활할 수 있는 자신감과 성취감을 선물한다.
나아가 영유 3년차에 빡세게 준비하는
Top 레벨급 대치 학원들의 레벨테스트에 합격해
그것도 상위 레벨 반에 랭크되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지표는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 교육받아 왔고
그리고 그 교육을 잘 흡수해
우수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지표가 된다.
반면,
유교 사상과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의 마찰도 일어난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웃어른들도
모두 평등한 선상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관계이다보니, 기성 세대와의 세대 차이와
생각 차이가 크다.
수업 중 문득
1학년에 입학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학생이
선생님! 이건 UNFAIR하잖아요!
라고 수업 중에 불쑥 외친 적이 있다.
아마도 아이는
수업 중에 자신의 발표 차례가 오지 않고,
모둠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마음에 안 들어
선생님에게 질문같은 불만을 귀엽게
표출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막 입학한
1학년 어린이에게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사춘기 청소년처럼 느껴지는 저 문장.
그 순간의 당혹감이란.
그리고 가끔
"선생님은 영어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돼."
라고 영어 단어를 섞어 교사에게
질문하는 친구에게
핀잔을 주곤 하는데
정말이지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을 받곤 한다.
솔직히 영유 3년 나온 아이들보다
영어를 못하는 것은 사실이니
별도의 답은 달지 않았으나,
아이들이 생각하는 선상에서
나는 굉장히 그들과 동일 선상 어디엔가 위치해 있는 듯 했다.
가끔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 이야기인 듯
다른 누군가에 대해 한참 웃으며 이야기하기에
그 친구는 몇 반이냐고 물어봤더니
학원 선생님 이야기라고 했다.
상하 관계보다는
수평 관계에서
모두가 대등한 존재라는 인식만큼은
정말이지 세대 차이를 느끼게 하고
젊은 교사로서 참을 수 없는 포인트를
교실 현장에서 의도치 않게 만들어내곤 한다.
한편으로는
공용어로 채택된 언어도 아닌데
영어를 술술 구사할 수 있을만큼
아이들이 얼마나 노력했을까
참 대단하다.
그걸 해낸 아이도 학부모도 한편으로는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아이들이 알고 있는 단어 수준은
이미 중학교 영어 수준을 넘어서고
공인영어 성적을
초등학교 3학년이면 준비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수능 1등급은
따놓은 당상이겠지만.
실제로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포함해
많은 영어 학원에는 엄격히 원내에서의 한국어 사용을 제한한다.
심지어 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해주는
입시 설명회에서 학원 원장선생님이 영어로만 말할테니
질문도 영어로 하라고 단호히 말하는 곳들도 있다.
영어유치원 입학 전,
부모나 조부모의 사전 영어인터뷰를 보는 곳도 있으니,
아이들의 유창한 영어 수준에 맞춰
어른들도 어느 정도 구사해야만 한다.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도 아닌데
요즘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영어유치원이나 영어학원에서
우리나라 사람임에도 한국어를 사용해도 되는지
허락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럴거면 차라리
공용어로 채택했으면 좋겠다.
사설기관에 들어가는 개인들의 사교육비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쨌든 그런 아이들이
한국어를 더 잘 구사하며
친구들과 노는 것을 보며
영어유치원을 보내 한껏 끌어올린 영어 실력이 퇴색될까
아쉬워하며 돈 아까워하는 시선도 있지만,
공립초등학교에서는 한국어를 쓰는 것이
당연한 규칙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