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을 혼자 못 정하는 아이들
선생님, 저는 누구랑 뭐하고 놀아요? 너무 심심해요.
쉬는 시간에 종종 듣는 이 질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선생님으로서 의아해지지 않기까지
나에게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심심한데
무엇을 할지
누구랑 놀지
정해달라는
순수하게 반짝이는 사슴같은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어린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정말이지
난감해진다.
그 흔한 '모래놀이'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세상 처음 해보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보면
정말 신기하며 귀엽다가도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해보고
평소에 무엇을 하는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외국 동요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OST는 가사하나 틀리지 않고
눈 감고도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은
더이상 '학교 종이 땡땡땡'이나 '떴다 떴다 비행기' 같은 동요는 모르기 때문에
나만 타임머신을 타고 온 옛사람이 되어
고독하게 옛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교실에 덩그라니 있는 기분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많은 것들을
요즘은 부모가 허락해주고,
부모가 허락한 방향으로만 경험해본다.
과거에 비하면
요즘 어린이들의 인생은
재미없고 따분해보이고
안쓰러울 때가 종종 있다.
플레이 데이트라고 해서
놀이 친구도 엄마가 설정해서 약속을 정하고,
생일파티할 친구들,
축구클럽을 할 친구들,
많은 모임을 엄마나 아빠가 주도하여
미리 짜둔다.
쉬는 시간은 정말이지 귀하고 황금같고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소중한 10분인데
누구랑 어떻게 놀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끝끝내 선생님에게 정답을 알려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이미 성장 환경자체에서 계속 무언가 확인받고
정답을 찾고 허락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에
정답이거나 확인이 되어야만 본인도 해보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말이지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에 비해
적응력이 좋아서
몇 주 지나 교실 상황에 익숙해지면
무리를 형성하거나 놀이 방법을 잘 터득한다.
그러나 진짜 2학기가 다되도록
저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조언을 해주곤 한다.
'저기 팽이 접기 하는 친구들에게 가볼래?'
'나무 블럭으로 도미노를 해볼래?'
어른인 선생님이
놀 길을 제시해주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도전해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짠하기도 하고, 착해보이기도 하고, 어수룩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혹시나 이미 무리를 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 속에
중간에 불청객처럼 들어가 끼지 못하게 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이미 놀이가 한참 진행중인
또다른 아이들에게 '같이 놀아보는 건 어때?'라고 물어봐주는
애프터 서비스까지 온전히 담임교사인 나의 몫이다.
아마도 그 이야기가 가정에 전해지면
쉬는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랑도 놀지 않았다고 할테고,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는지
걱정을 불러일으킬테니까 말이다.
(정말이지 교우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문득
내가 몰랐던 세상은 이랬던 것인지,
우리 엄마가,
아니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너무 무관심하고
막 키운 것(?)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어릴 때
그러니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나이 정도 일때
엄마는 내가 학원에서 무엇일 배우고 있는지,
무엇을 못하는지,
그래서 뭘 더 배워야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고 숙제나 자세한 디테일은 전혀 모르셨다.
고 3때 나는 왜 서울에 있는 논술학원을 안 보내주고
다른 엄마들처럼 수시 쓸 학교를 찾아봐주지 않는 건지
엄마는 왜 입시에 아는 게 없는지
답답해한 적은 있다.
하지만
K장녀답게 알아서 척척
혼자 힘으로 조사하고 해왔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독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어렴풋이 나와 다른 어린 시절이라 그런거겠지
짐작할 뿐이다.
아마 과거에도
부모가 닦은 A코스를
그대로 밟고 따라가는 아이들이 있었을테고
그들만의 울타리에서 자란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과거에도 대치동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이렇게 달렸을것이고
나만 몰랐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엄마만 빼고
다른 엄마들은 아이에 대해
올케어를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요즘은
대다수가 부모가 제시하는
A코스만을 별 의구심없이 따르고
순종적으로 거기에 본능을 맞춰가는 세태는
너무나 이상하고 기묘하다.
알아서 내버려두고 기다리기엔
아이의 실패와 좌절이
마치 부모의 실패와 좌절인 것만 같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는 듯이 온종일 지켜보며 같이 달린다.
분명히 입시는 마라톤이라면서
아이의 나이가 한 자리 수인 어린 순간부터
전속력 달리기를 시작한다.
물론
아이들은 조금더 천천히
주어진 시간과 계절을 흠뻑 즐겨도 된다고
조언하기에는 너무나 각박하고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친구들과 끝나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
마냥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도,
놀이터에서 서로의 고민을 상담하느라
해가 뉘엿뉘엿 지는지도 모르는 것도,
이제는 편안하게 즐길 만한 장소도 시간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시간은 소중해서 낭비되어서는 안되고
상처받지 않아야 할 아이들의 마음도 고귀하다
하지만,
실패해보고 상처받아보고
다시 시간을 돌리지는 못하더라도
잘못한 점을 조금은 다시 고쳐
시간도 조금은 낭비해보는 것도
어느정도는 필요하다.
솔직히 나도 때로는 어렵지만,
한 번쯤은 먼 발치에서
지켜봐주기만 하면 좋겠다.
그런 부모님이 계셔서
정해진 뻔한 재미없는 길 대신
다른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도
용기내서 한 발자국 걸어가보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뻔한 노잼 인생을 가진 사람보다
다채로운 인생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이라 기억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