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린이도 우울하다
넌 참 좋겠다. 걱정이 없어서
드라마를 보다보면,
갈등을 겪고 있는 어른이
순수한 눈망울을 가지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여주는
어린이에게 건네는 이 한마디는
요즘 상황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되어 버렸다.
현대 사회가 점차 발달해가며
어느 분야든 경쟁이 필요하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간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해졌다.
회사, 공기업, 공공기업 등
직장에서는 성과를 줄세워 성과급을 책정하고
등급에 맞는 보상을 제공한다.
경쟁에 치여 어떻게 하루가 흘러가는지 모르고
누군가에게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는 와중에도
내 아이만큼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소망이 모여
대치동, 목동, 중계동 학원가로
더 아이들을 보내는 원동력이 되어간다.
학부모들의 소망은 때로는 모순된 형태를 보인다.
나보다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기대하면서
본인이 어릴 때 해냈던 수준이나 실력보다
훨씬 더 잘 해내야 된다는 압박감과 긴장감, 경쟁심을 자극시킨다.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는 본인의 불안감이 투영되어
아이가 더 뛰어난 아웃풋을 보일 수 있도록
몰아세우고 채찍질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교사이자 엄마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불쑥 올라오는 욕심 중 하나는
'나도 할 줄 모르지만 아이들은 잘 해내기를 바란다'는
모순된 기대이다.
물론 내가 만능 로봇도 AI도 아니니
잘 못하는 것이 더 많은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성장기인 아이들만큼은
그 나이에 요구되어 마땅한 능력보다 훨씬 더 뛰어남는 무언가를
지금 해내야만 한다고 몰아세우는 나를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비단 나의 아이도 아닌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투영되는 나의 욕심이 이러한데,
자녀에게는 얼마나 많은 욕심이 투영될 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아이들의 지적 수준이나 인지 능력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상향 평준화되었다.
아는 것도 많고, 이미 배운 것도 많다.
가끔은 정말이지 깜짝 놀랄 수준의 대답을 하기도 하고
도리어 내가 배워야 할 입장이 되어버린 것 같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손발의 조작능력이나 협응력,
상황 대처능력, 융통성, 사회성은 과거에 비해
월등히 하향 평준화되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적어지고,
마음이 열리지 않다보니 남을 헤아리는 아량도 줄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아는 게 많은데
할 줄 아는 게 적어진 아이들
과거에 비해 가위질이나 종이접기를 못하고
혼자 단추를 잠그거나 지퍼를 열거나
정리정돈을 못하고,
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기 미숙하더라도
워낙 아이들이 집에서 해야할 숙제도 공부도 많다보니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집에서 가르쳐주고 연습해보라고 안내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언젠가 스스로 해낼테고
지금은 남의 손을 타겠지만
때가 되면 스스로 할테니
학부모들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또래보다 야무진 손길과
스스로를 챙길 줄 아는 행동을 내면화하는 것보다,
또래보다 월등한 성취를 보여
경시대회에 나가 상을 받거나 높은 반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것이
더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학교 일과가 마친 후,
아주 잠깐의 시간을 놀다가
하루에 평균 2개~3개의 학원 스케쥴을 소화해낸다.
옛말에
'전기세 내러 학원간다'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은 쉴 틈 없이 진도 나가는 것을 따라잡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전기가 켜져있는지 꺼져있는지 조차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바쁘게 학원을 오간다.
더 대단한 것은
어릴 때부터 경쟁의 선상에 세워져
순위와 등급을 받는 것이 익숙하다는 점이다.
이르면 만 3세부터 테스트를 받고
기관에 입학허가를 받고
시험 점수로 반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자신의 위치를 눈앞에서 확인받는다.
모든 과정과 결과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학부모의 응원과 신뢰는
아이들에게 더이상 아래로 물러날 곳 없이 계속 더 오르는 방향만을 제시한다.
사회 곳곳에서
누군가에게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며
성과급 제도를 폐지하고 줄 세우지 말라고 주장하면서도
너무나 당연하게
내 아이는 남들보다 상위에 랭크되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과 소망을 가진다.
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아주 얕게 얼어붙은 강 표면처럼 만든다.
언제 어디서든 깨지고 무너지기 쉬워
톡 하고 건드리면 눈물이 나고 억울하고 슬퍼한다.
만 9세 이하 아이들의 우울증이 증가한다는 기사는
'정말 심각하다'는 경종을 울리기보다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구나'라는 안도감을 주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인생은 어짜피 경쟁 사회이고 누군가보다 무언가 더 잘 해내야 <성공한 삶>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래서 더 어릴 때부터 경쟁에 익숙해져야 하고 굳건히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남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버텨야 미래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어른인 나조차도 버티기 힘든,
사교육계의 과도한 경쟁의 쳇바퀴는
멈출 줄 모르고 지금도 뱅글뱅글 돌아가는 중이다.
가속도가 붙어 멈추는 것이 더 위험한 수준의 속도로 도는 와중에도
수준높은 경쟁 참가자들은 점점더 많이 쳇바퀴 속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탑승 중이다.
그 쳇바퀴에 내 아이를 넣자니
너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내가 마음이 약하거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약한 어른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