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비주류 학부모의 일상
어디 살아?
오랜만에 만난 대학교 동기 오빠의 질문에
"아, 나 대치동 살고 있어."
라고 답을 하며 나도 모르게 그 뒷 이야기를
장황하게도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맞벌이로서의 삶을 인정해야하니까. 아이가 학원에 혼자 다닐 수 있는 동네로 왔어.
나보다 입시 지옥은 더 많이 겪었을
외고 출신의 동기에게
나의 거주지를 밝히면서
마치 내가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삶의 포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참 길고도 길게 꺼냈다.
대치키즈인 직장 동료의 말로는,
지방에 살던 내가 몰랐던 것일 뿐
과거부터 대치동은 넘사벽으로 달리고
달리고 선행하고 어려운 걸 배우며
분화된 학원을 돌고도는 학생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대치동의 매운 맛'을 알아버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사교육 일번지에 이사온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빨려들어갈 듯한 광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친 속도와 수준을 자랑하는 학원들이 넘쳐나고 그걸 별 어려움없이 해내는 아이들도 넘쳐나는 레벨의 삶이 있었음을 알았더라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고음을 편안하게 부르는 광경을 지켜보는 마음
(부러운데 따라할 수가 없음)
대치동으로 이사가겠다 도장을 찍어버린 나는
사실 이사온 지 1년 남짓
남들은 모두 7세 고시 레테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가장 영어 레벨이 쉽다는 학원에서마저 입학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아야했다.
어머님은 아이의 중요한 시기에 뭘 하신거냐고
공부시키셔야 한다는 그 말을 7세부터 들어야하다니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면서.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놀기만 하고 아웃풋도 안나오는 곳이고, '아무나' 붙여주는 곳이라 학원 관리가 안되서 안보낸다고 했는데, 우리 아이 수준은 '아무나'에도 미치지 못함을 확인받았다.
내가 계란으로 바위치러 온 건가
이러다 진짜 바닥을 까는 게 아닌가하는
그 밀려오는 공포감과 불안과 두려움.
놀이터에 아이와 나와 놀면서도
표정 관리가 안되고 도통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화가 났다가 슬펐다가 짜증이 났다가
우울증 환자가 된 마냥 깊은 심연에 들어가기도 했다.
게다가 진짜로 '이 동네에 다닐 학원이 없다'는
사실에 추리해보건데 정말이지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같은 반 친구들 중에 중하위권도 안되는 뜻이 아닌가.
고작 초등학교 1학년에 이렇게 되면
아무리 고등학교 가서 따라잡을 수 있다지만
그 간극이 좁아질 시기가 있긴 한 걸까.
이미 나보다 이런 학원 체제를 알고 있었던 남편은 내 아이에게 안 시킨 많은 것들에 초조해하고 미안해하는 나를 보고, 그러게 학원을 왜 안 보냈냐고, 그렇긴 해도 때되면 다 할 건데 뭘 그렇게 걱정이냐고 잔소리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학원이나 영유에 열심히 보낸
누군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명제라니.
결국 다 내신에서 만난다고 해도
우리 아이는 '누군가를 따라잡아야만 하는' 위치가 확정인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학원 스케쥴을 짜야하는데 주요 과목에 대한 대비는 없었다.
(무슨 유치원생에게 대비냐고 하겠지만)
그냥 엄마랑 눈높이를 2년 넘게 같이 풀고
책을 읽고, 한글 공부 좀 하고,
가끔 사고력 수학 문제집에 낙서를 하며 풀었다.
알파벳은 b와 d가 구분이 잘 안되고
듣기나 말하기는 어느 정도 하지만
'에세이 쓰기'를 포함한 4영역을 시험본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국어 4영역을 보면 3~4학년 수준이 나오기도 어려울텐데 이동네는 영어로 5학년 수준도 나온다니.
모두들 어떻게든 아이를 그 수준에 끌어올려 평균 이상이 그렇다면 결국 내가 평균 이하라는 결론이 아닌가.
(일반 유치원에서의 학습과 엄마와 한 몇 가지 활동으로는 학원에서 레벨이 나올 정도가 안됨. 왜냐하면 문자 언어를 안 했기 때문에 레벨 측정 불가 판정을 받게 됨)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에게
좌절을 경험해주고 싶지 않아서
결과는 나만 알고,
그리고 처음 시험을 보며 울고 나온 아이에게
괜찮다 다독이며 평안한 척 했지만
속은 정말이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나는 일을 해야하고
아이가 방과후에 다닐 학원은
2월 전에 모두 정해져야만 했다.
결국 레벨 테스트를 수업 중에 보는 프랩반이 개설된 학원에 넣어 수준 이상의 교과서와 문장들을 그림그리듯 외워가
멱살잡혀 영어 학원 수업을 5개월 넘게 듣고 나서야, 결국 *GG를 선언했다.
*GG : 게임 용어(Good game) 더 이상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될 때 항복하면서 사용하는 말
너무 힘든 기간이었지만 아이도 잘 따라주고
언어적 재능이 있다는 칭찬을 받으며 겨우 버텼다.
하지만 낫 놓고 ㄱ 자도 모르는 어린이와
해가야할 숙제의 양과 수준이 너무 매서워
결국 엄마의 몫을 잘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그만뒀다.
(엄마와 둘이 숙제하며 많이 싸우고 울었지만 진짜 많이 배운 건 사실)
배운 것이 많아 다른 즐거운 학원 레테에 턱걸이를 해 다니는 중이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동네에서 안정적으로 학원을 다니려면 적어도 '남들 하는 만큼은' 해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남들 하는 만큼' 시키거나.
그러니까 나는 '남들 하는 만큼' 시키지 않은
이 동네 *마이너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을 뿐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되서 마이 웨이로 아이랑 알콩달콩 잘 지내며 지내고 있다.
*마이너 : 주류(메이저)에 속하지 않는 비주류, 또는 인기가 적은 작품·장르·커플링 등을 지칭하는 용어
알다시피 애초에 남들 하는 만큼 하지 않았다면
학원 선택의 폭은 확 줄어들 뿐더러
(물론 갈 곳은 있다)
이왕 늦은 거(?) 그리 쫄아서 쫓아갈 필요 있나하는 배포가 생겼다.
어짜피 지금 상대도 안 될 뿐더러,
경쟁 상대 자체가 없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공교육 과정 내에서
해내야하는 것들을 잘 해내고 있고,
자기가 '무엇이든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다.
(굳이 시험보고 줄 세우는 곳에 아직 발을 안 담근 덕분일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의 삶 자체가 공부는 늦게 트인 스타일이라
아이가 유아와 어린이 시절에 두각을 나타내리라고 꿈꾼 적은 없었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컨설팅받고
조언받을 수 있는 곳 가까이에 있어야겠다고 느껴왔을 뿐이다.
대치동에
<의대 입시>가 광풍이 불어서 그렇지
<미대 입시><체대 입시><음대 입시><외국 대학><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분야의 입시 전문가와 학원들이 모여있다.
<예중><국제중><외고><과고><영재고> 등
수많은 분과들에 가는 방법을
꿰뚫고 있는 학원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최근 예중에 합격했다는 한 아이는
초등학교에서 허가되는 19일의 교외체험학습을 모두 소진하며 하루에 12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학원에 다녔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학원은 어마어마한 수의 합격자를 배출했다고.
그러니까 반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콕 찍어 합격에 필요한 길을 이미 닦아놓은
수많은 루트를 찾는 것이 대치동에서는
오히려 쉬울지도 모른다.
맨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수능 정시로 착실하게 공교육을 따라와
성공했던 나로서는, 나보다 내신이 낮은데 서울에 논술 공부를 하고 오더니 K대에 붙었던 친구가 부러웠고, 수포자였던 친구가 캐나다 이민을 가 주립대를 가더니 국내 Top3 학교에 교환학생을 온다는 말에 배가 아팠다. 분명 수능 성적으로는 내가 더 높은데 의대에 입학한 친구도 있었고, 부모님이 선망했던 교대는 나의 성적표로 가장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신입생이 되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가지 않은 길을 넘보며 이제와서 드는 생각은
나의 어깨를 돌려 정확히 포인트를 짚어내주고
조언해줄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더 나은 선택을, 더 나은 결과를 만나지 않았을까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아니면 어떤 길을 고민할 때
그 선택에 가장 좋은 방법이나 멘토를 찾아주고 싶어 이곳을 선택했다.
왠지 '대치동'산다고 하면 내 아이가 7세 고시를 통과해 초등학교 3학년에 수능 영어를 마치고, 황소 레테를 식은 죽 먹기처럼 붙어 일품반에 갔다가 중학교 들어가며 고등 수학을 몇 바퀴돌릴 수 있는 아이로 만들러 갔다고 생각할까봐서 자꾸만 변명을 늘어놓는다.
제 아이는 예체능 위주로 다녀요
이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학원 스케쥴을 보유하고 있지만, 굳이 묻지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대치동 학부모들 사이에 끼어 그냥 매일 바쁘게도 아이와 함께 하교하고 학원을 보내는 중이다.
다 큰 어른이 되고보니
자기 몸을 스스로 관리할 줄 알고,
운동 하나는 멋지게 해내며,
몸을 아름답게 쓸 줄 아는 사람이 참 부러워서
자꾸만 예체능 학원을 기웃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대치동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학원 스케쥴>
월 영어(2시간 반) 줄넘기(50분)
화 수영(50분)
수 바이올린(40분) 피아노(50분)
목 방과후(1시간 30분)
피아노(50분) 수영(50분)
금 영어(2시간 반) 줄넘기(50분)
토 속독(50분) 노래(50분)
일 스케이트 (1시간 30분)
*엄마랑 학습지/ 문해력책/ 사고력수학책/경필연습
친정엄마는 본인이 '미술'을 못해
나에게 '미술'을 엄청 시켰다고 했다.
결국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되었는데,
운동을 잘 못하다보니 아이에게
자꾸만 운동을 시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이는 목요일이 가장 좋다며,
방과후에서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진짜 이렇게 놀아도 돼?
매일 매일 너무 바빠보이지만
'주요 과목' 학원은 영어 뿐이다.
누가 보면 엄마가 굉장히 자신있거나
방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놀기만 해도 되는거냐 물어볼 것이다.
아이가 공부로 승부를 봐야하는 한국 사회에 샇고 있지만, 승부를 위해 전속력 달리기 전
자기 재능을 어디서든 찾았으면,
삶의 취미 하나는 진득히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램에 예체능 싹은 저학년에 자르라는(제 4화 참고) 주변의 조언에도 아는 물도 주고 새로운 싹도 심어보는 중이다.
아, 혹시
제목을 보고 진짜
대치동 보통 아이들 학원 스케쥴이 궁금해
이 글을 다 읽은 분이 있다면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학원을 안 보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내는 것도 아닌 회색 분자로서의
마이너 엄마라 괜시리 학원을 밝히면 누군가를 실망시킬 것만 같은 괜한 미안함이 든다.
보통 아이들은
수학 2곳, 영어 2곳까지도 다닌다.
각각 2시간 이상씩이고, 수준은 +2학년 이상이며 1학년에 6학년 수학 진도를 나가기도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렇게 해나가는 것에
프라이드를 느끼고 남보다 어려운 걸 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겸손하고 자기보다 잘하는 애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 스스로 잘하는 줄 모르기도 한다.
우수하고 똑똑한 친구들과
교우 관계를 맺고 성장하며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커가는 것은
실로 큰 장점이다.
하지만 반대로, 무엇이든 잘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심지어 운동과 수학, 영어, 한자 등 모든 걸 잘함)
자신만의 강점을 찾지 못해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감을 잃을 위험이 크다는 것은 치명적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