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래왔듯이
과밀학급, 거대 규모의 학교에 근무하다보면
별의별 아이들과 다양한 사건사고들,
희한한 학부모들의 이야기가 마치 전설처럼 내려온다.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에비앙 수원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은
실제 스토리들이 펼쳐진다.
그러다보니 <생활지도>는 그 무엇보다 교사들에게
막중한 임무이자 큰 부담이다.
일단, 교실당 학생 수가 평균 35명을 이미 훌쩍 넘어섰고,
교실의 크기는 다른 학교의 그것과 동일하다.
콩나물 시루처럼 지나갈 틈 없이
빼곡히 책상이 들어찬 공간을 보면
정말로 요즘 교실이 맞느냐며 반색하고 당황할지도 모른다.
불쾌지수가 조금이라도 올라가는 날
또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혼자서도 감당안되는 짜증과 우울이 뒤섞여
지척에 있는 친구 그 누군가와 사소한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공간적 조건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과반수 이상의 아이들은 매너있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언행이 바른 편이고, 대놓고 험한 욕설을 쓰는 아이의 수도 적다.
어떤 면에서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6학년이 되어서도 유지한다.
심각한 욕설이나 비속어를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경우의 비율은
다른 학교들보다 적은 편이다.
보통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고학년이 되어서도 부모의 통제가 가능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그 무엇보다 싫어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몸을 사리고 아이에게 미리 주의를 주는 편이다.
하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현실적인 제약은
학급의 밀도나 전국 최대 규모의 전교생 수가 아니라,
바로 <성적 만능주의>이다.
보통 하교 후에도 학원 일정이 계속 이어져 있는데
밤 9시 30분에서 10시까지 집 밖에서 수업을 듣고,
먹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제외해보면
무언가를 새로이 배우고 (또는 몇 바퀴 돌린 상태)
확인받고 시험을 치르고 새로운 숙제를 받아오는 시간이 이어진다.
오랫동안 학원에 있는 만큼,
배운 것을 복습하고 다음 수업에 해가야 하는 예습 숙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 숙제를 학원 가기 전에 다 해야만 하기 때문에
(왜냐면 학원에 가면 다음 진도의 숙제가 주어지기 때문)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작은 글씨와 온갖 그래프가 가득한 숙제 워크북을 해내느라 바쁘다.
어른들의 삶을 예로 들어보자.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에 일과를 마치고 퇴근 후에도
무언가를 배우고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주 3회 운동은 정말 굳은 의지가 없으면 불가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무언가 새로이 배우는데
반드시 그것을 습득해 시험을 보는 스케쥴이 계속 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주 1회의 외국어나 취미 수업도 결석없이 매 주 가는 것조차
무척이나 어렵다.
게다가 계속 다른 과목들을 배우고 공부해가며
밤 10시가 되서야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면,
아마 과로로 쓰러지거나 성격이 파탄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은 이르게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밤 7시나 8시까지 이어지는 학원 루틴을 소화해낸다.
4교시 하는 날은 1시부터 학원 수업이 시작되고,
5교시 하는 날은 2시부터,
6교시 하는 날은 3시부터 일정이 이루어지니
논술 2시간, 수학 3시간, 영어 3시간 그러면서도 건강이나 취미를 위한
운동과 악기 수업 등이 빼곡히 차있는 매일의 스케쥴을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과도한 놀이 일정이나 여행 계획은 짜지 않고,
예상 외의 체력이 소모되는 일을 꺼린다.
갑작스레 노는 일은 잘 없는 편이고,
정확히 시간을 지켜 노는데
무엇보다 쌓여가는 피로와 스트레스가 이어지고 이어져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상담이나 약물 치료로
다시 몸을 회복시킨다.
안타깝게도 이런 상황에서 한 줄기 휴식과 달콤한 자유 시간은
'성적이 괜찮다면' '상급반으로 올라간다면' ' 더 상위 학원 레테를 통과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실현되면 가능하다.
학부모가 원하는 수준이나 성적표,
또는 학원에서 기대하는 점수가 나온다면
가뭄에 단비같은 휴식이나 상이 주어진다.
그래서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평가받는 것이 당연하고,
익숙해져버렸다.
그 이면에서
'성적만 괜찮다면'
약간의 일탈, 학교 생활에서의 문제, 교우 관계의 잡음, 건강을 해치는 기호식품에 대한 부분까지
모르는 척 눈 감아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때로는 학교에서 걸려오는 생활지도 관련된 담임 선생님의 조언에
우리 아이는 학원에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선행의 정도나 시험 성적)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고 반문하는 학부모가 나타나기도 한다.
모든 것의 면죄부가 '성적'이라는 마인드는
과거에 고등학생 때나 있어왔던 이야기인데
(실제로 전교권 학생들은 밀어주거나, 사건에 휘말려도 눈감아주기도 했던 과거 시절)
요즘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도대체
수험생의 마인드로 몇 년을 살아가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더이상 할 조언도 방법도 남지 않았지만
정말이지 고쳐야 할 행동이 있다고 말하며
서로 평행선같은 말을 내뱉지만,
결국에 아이는 괜찮고 학교에서 그런 행동은 자연스럽게 고쳐질 것이고,
학원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하고 있어
곧 적응하고 나아질 거라는 말만 남기고 통화가 종료된다.
마치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