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를수록 좋지만, 다시 내려오기는 쉽지 않은 벨트
찰리 채플린 주연의 흑백영화 <모던 타임즈>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익살맞게
풍토를 꼬집으며 등장한다.
반복된 작업에 지친 주인공은 결국
무언가를 계속 조이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공장 부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회사나 조직의 부속품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받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소망과는 별도로
자녀들은 그 누구도 감히 다른 길을 찾을 방도가 없다는 이유로,
가속화되고 경쟁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는 무리에 빨려 들어가는 중이다.
뛰어난 아이들만 올라탈 수 있다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가기 위해
확인받고 시험받으며 살아간다.
획일화되고 주입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을 비판하고 부정하면서도,
결국에는 성공가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길을 찾아
자녀가 무사히 그 벨트 위에 안착하기를 소망한다.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라 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를 오솔길을
혼자서 찾아나서는 것은 왠지 막막해서
남들이 맞다고 하는 길을 선택하는게 나은 것인지
늘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손목이나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초침보다 빠르고
멈춰 세울 수 있는 버튼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 벨트 위에서 내려가고 싶다면
움직이고 있는 벨트 위에서
올라오는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용기있게 어딘지 모를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방법 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게다가 심지어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를 자랑하는
벨트에 아이를 올리려면
가능하면 어릴 때, 뭣 모를 때, 엄마 말 잘 들을 때,
안착시켜 무난히 별다른 거부감없이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선배엄마들의 팁이
맘카페와 입에서 입으로 구전동화처럼 내려온다.
규격화된 상품을 쓰는 것은 불필요한 실패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고민하고 고를 시간을 줄여 준다.
게다가 먼저 써본 수많은 사람들의 후기와 사용 방법을
단순히 따라하면 되니 바쁜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방법이다.
어느새 아이들의 교육도 이처럼
규격화되고 서열화되고 표준화되었다.
아무리 학교에서 아이들을 서열화시키지 않고, 수행평가로 평가하며,
재시험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대부분의 교과에 *잘함(◎)을 표기하고
반 석차조차 내지 않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어디선가 촘촘히 서열화된 석차와 내 아이의 위치를 확인 받아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초등학교의 성적 표기법 : 잘함(◎) 보통(○) 노력 요함(△)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와 흡사하지만 전혀 다른 것으로
인천국제공항의 탑승게이트로 향하는 무빙워크가 있다.
넓디넓은 국제선 청사에서 다양한 항공사의 비행기에 내 몸을 싣기 위해서는
비행기 티켓에 표기된 게이트로 향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걸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무빙워크를 타기도 하는데 속도도 방향도 모두 다르다.
그리고 남보다 빨리 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에 도착하는 종착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빨리 가고 싶거나 다리가 아프다면 무빙워크를,
걷거나 면세점을 구경하고 싶다면 걸어가도 된다.
내 아이의 탑승 게이트와 탑승 시각이 적힌 비행기 티켓이 없다
이왕이면 삭막한 컨베이어벨트보다
방향도 방법도 다양한 국제선 무빙워크처럼 움직이면 좋겠지만,
우리 아이가 어디로 어떻게 언제 도착해야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은 대다수 아이들이 타고 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일단 올라가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들이 좋고 많이 다닌다는 학원에 학생들이 더 모여들고,
대형 학원에서 주기적으로 내주는 전국 석차와 퍼센트에 점점 더 집착하게 된다.
우리 아이만 안하거나 나만 못 시키고 있는 건 없는지 노심초사하면서.
이러한 상황이 단지 대치동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전국 단위의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는
엄청난 소음이나 불편한 승차감 따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어마무시한 속도로 돌아가고 있다.
알아서 누군가는 올라오고 누군가는 내려가면서 어디론가 향해간다.
대다수가 'YES'라고 외칠 때,
나만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어른으로 크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 역시 커다란 컨베이어 벨트 아주 가까이서 맴돌며
언제 어떻게 우리 아이를 올려야
아이의 충격이 덜한지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인지 짐짓 계산해본다.
팔 힘이 모자라 못 올리거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어쩌면 고개를 돌려 아무도 찾지 않는
오솔길을 용기있게 찾게 될거라는 걸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