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른 너무도 다른 경우의 수

대치동에서 학원 조합이 같은 아이를 만나기 어려운 이유

by 대치동 비둘기

대치동에서 아니 범대치권에서 학원을 라이딩하거나 인근 소재의 학원을 보낸다면 지켜야할 에티켓 중 하나는 '절대 학원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묻지 않는다'이다. 바늘구멍같이 좁디 좁고 어려운 레테를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Top급의 학원들이나 대형 프랜차이즈이면 모를까 실은 먼저 이야기해준다고 해도 어디에 있는 무슨 학원인지 한 번에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운 일 중 하나이다.



대치동에 이사오기 전, 아이는 학령기가 아니어서 학원을 돌리는 일이 없어 관심이 없던 시기였지만 동네에 있는 수학이나 영어학원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길을 가다 보이는 학원들의 상호명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고 그 중 반 이상은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치동에 와보니 촘촘하게 늘어서 있는 간판들에 붙어있는 학원의 이름들은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꽤나 어렵고 다양하다. 수학 기호를 붙인 곳, 약자를 쓰는 곳, 수학자 이름을 붙인 곳, 순우리말이지만 생전 처음 듣는 단어를 간판으로 내걸어서인지 너무 많아 기억하기도 어렵다.



아이들의 오후 스케쥴의 경우의 수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경우의 수 예시

수학 영역 중 <확률과 통계>에서는 어떠한 경우를 제시하고서 선택할 수 있는 총 경우의 수를 구하는 문제가 나온다. 예를 들면, 상의가 2벌 그리고 하의가 2벌이라고 할때 상의와 하의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총 4가지가 된다거나 과일 3가지와 과자 2가지를 하나씩 고를 때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6가지가 되는 식의 문제들이다. 언젠가 풀어봤던 이런 문제들이 아이들의 오후 스케쥴에 대입해보면, 정말이지 실로 엄청나게 다양한 수의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경우의 수 예

학원이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다보니, 일단 한 과목 과목마다 선택한 학원이 달라지고 만약 같은 수학 학원을 다닌다하더라도 반이 다르거나 시간이 다를 수 있다. 게다가 추가로 영어 학원을 다닌다면 그 학원까지 같을 확률은 거의 없다. 간혹 고학년의 경우 본인이 친한 친구과 학원을 똑같이 보내달라는 요구를 하거나, 중고등학생의 경우 내신 대비반을 보내서 겹칠 수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성적에 따라 또는 생각하는 목표에 따라 다양한 경우가 나온다.



함께 만날 약속을 잡기 어렵다


방학특강 시작 시간 대치동 거리


방학이 아닐 때도 어려웠지만, 심지어 학교 방학을 하고서 친구들끼리 만나 놀게 해주고 싶어도 저마다 너무나 다른 스케쥴을 가지고 있어서 빈 시간을 찾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도 어렵다. 그리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묻자니 다니는 학원을 묻고 알아내는 것만 같아 조심스럽고, 굳이 억지로 시간을 만들려하는 노력을 점차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아이들은 주요 과목 이외에 줄넘기나 피아노, 미술 학원 시간표를 같게 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그나마 친구와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시간이 된다.



인생은 고독하다는 것을 이른 나이에 알게 된다



이상하게도 잠깐 등하원 길에 마주치거나, 교문에서 만나는 것이 내 나이 또래 엄마들과의 조우 시간이 끝이라 유독 이사와서 뭔가 역시 인생은 나 혼자 사는 것이구나 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누가 이 학원이 좋다고 해서 귀가 얇아 등록을 하거나, 다른 친구가 다니니 그냥 시간을 맞추자는 식의 선택을 하는 엄마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종종 고독하고 혼자만의 사고를 많이 하게 된다.


저녁시간대 대치동가는 길

아이 나이가 같을 뿐, 서로 너무도 다른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한다. 사적인 부분을 캐묻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때로는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결국 반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 친했던 친구조차 만나지 않게 되고 멀어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조삼모사인가 하는 생각도 문득 든다.



예전처럼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노는 추억도, 친구들이랑 동네 여기저기를 어른 몰래 다녀보는 탐험도, 꼬깃꼬깃 모아놓은 용돈으로 엄마 몰래 뽑기를 하고 불량식품을 사먹는 비밀도 만들 수 없는 요즘의 아이들은 취미나 시간을 보내는 방법마저 달라져서 같이 무언가 하는 것이 인위적이고, 억지스럽고, 포장된 느낌이다. 어른들이 미리 만들어놓은 시공간에 들어가 그 테두리 안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만 허용되는 학창 시절이라니. 안전한 것을 알지만 때로는 그 틀 밖으로 나가보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나하는 괜한 걱정마저 든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도 친구들은 다 학원에 가있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누구는 뭘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누구와 놀고 싶긴 하지만, 놀 수 있는 시간이 그다지 길게 허락되지 않을 뿐더러 대부분은 거절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아버린 건 아닌지 괜히 미안해진다. 그 거절이 싫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스케쥴의 빈 공간의 교집합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미 깨달은 것 같다.



내가 잘하고 있는걸까



임용고시를 공부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과 출신이었던 나에게 인문학에 속하는 교육학을 공부하며, 수학처럼 답이 나오는 문제들도 아니고 나의 점수도 위치도 도무지 깜깜한 가운데 시험날짜를 향해 무작정 책을 파고들어야했던 그 회색빛의 시간이 나는 너무도 힘들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지나갈 때마다 깊은 생각을 하고 사는지 반성하게 되는 국어학원

누구에게 대놓고 묻기도 어렵고, 파악하기도 어렵고, 세상에 답이 하나뿐인 것도 아니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듣고 싶고 확인받고 싶어지는 그 순간들. 아마 그 순간들의 불안함과 불확실함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것 중 하나가 학원의 테스트와 상담이 요즘 부모 세대의 목마름을 잠깐이나마 해결해주며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만 같아 자꾸만 기대고 싶어지는 것은 아닐까.



점수와 지표로 나오는 것에 익숙하고, 주어진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삶을 살아온 우리 세대는 옛날처럼 우르르 갔던 동네 보습학원에 비하면 백화점 매정처럼 화려하게 세분화되고 다양해진 학원들을 바라보면서, 선택지가 많아서 너무 좋다고 하면서도 막상 남들과 너무도 다른 선택을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고 눈치를 보고 살아간다. 그래서 가장 인기 상품과 상품평이 많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나서고, 우리 아이와 맞지 않으면 좌절하고 불안해하며 또 다른 학원을 찾아나선다.



인생은 고뇌의 연속이라지만, 학령기 아이를 가진 세대의 가장 큰 고뇌의 대부분은 아이의 학원과 사교육에 대한 것이다. 해도해도 만족이 안되고, 나만의 경우의 수로 짠 스케쥴이 아이에게 어떤지 다른 아이들은 어떤 경우의 수로 학원을 다니고 있는지 늘 비교하고 생각한다. 아이의 성적이 안나오는 것도, 부쩍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가 많아진 것도 학원 때문인 건 아닌지 의심하고 걱정하면서.



분명 지금 앞으로 아이들에게 펼쳐질 세상은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새로운 정답이 생기고, 지금 없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을 알면서도 고전적으로 이어온 정답의 선상에서 그리고 누군가 정해놓은 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어렵고 고민되고 머리가 아파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친구들과 너무도 다른 아이의 일정이 혹여나 나중에 아이에게 더 좋은 결과를 미칠지 아닐지 고민하면서 3월부터의 시간을 채울 의무감을 가지고 요즘 들어 부쩍 경우의 수를 많이 만들어보고 복잡하게 선을 그어보는 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확률과 통계가 수학에서 가장 일상 생활에 많이 쓰이는 영역이 아닌가 싶다. nPk, nCk... 아마 대치동 학원과 식당으로 경우의 수 문제를 낸다면 정말 엄청난 자릿수의 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계절처럼 지나가는 동네 이야기를 쓰는 초등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