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와 제 3자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

by 대치동 비둘기

사람들은 '남 이야기'를 쉽게 하고, 판단 역시도 쉽게 내린다. 막상 본인은 그 상황을 절대 도래하지 않을 것처럼 쿨하고 대수롭지않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은 왜 그래?"

"요즘 엄마들은 왜 그래?"


우리나라의 엄마들은 불행하게도 그 구설수와 판단의 잣대에 자주 등장하는데, 과하고 버릇없고 많이 요구하는 개념없는 부모들로 뭉뚱그려 손가락질 받기도 한다.



그 중심에 육아 그리고 교육이 있다.

친정 엄마가 아이가 어린 시절 이해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는 자기도 손녀가 있어 어린 아가들을 보면 눈길을 주고, 웃어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을 뿐인데 매서운 눈초리가 되서 째려보는 다른 엄마들의 마인드였다.



자그마한 아가들은 내성이 없을테고, 낯선 이의 손에는 어떤 병균이 묻어있을지 몰라 몹시도 방어적일지라도 그 마음은 아가들의 엄마만 이해할 수 있는 방어적인 마음일 뿐이다. 조금 만진다고 해가 되지도 않고 병이 옮는 것도 아닐텐데 어쩜 그리 사람을 무안하게 하냐는 친정 엄마 세대의 공통적 이야기는 세대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일 뿐이다.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는 타인을 바라볼 때면 몹시도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점에서 판단하고, 가끔은 답답해하며 과하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육아휴직이 끝나 복직했을 때조차도, 요즘 학부모들의 이해할 수 없는 이기심이나 무책임함, 또는 극단적으로 과도한 관심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기 아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수십 명의 아이 중 하나가 아닌 주인공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 세부적인 사항까지 디테일하게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다수 속의 한 명



아이들이 어떠한 기관에 들어가고 입학하는 순간, 그 아이는 '다수 속의 한 명'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렇게 매섭게 학교를 바라보지 않아도 될테고 너그러워질텐데 어쩜 그리도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아이가 커서 기관을 가고, 유치원을 졸업해 초등학생이 되고나니 어렴풋이 어떤 포인트에서 학부모들이 서운함을 느꼈을지 언제 과한 불안감이나 초조함, 실망감을 느끼는지 알아가는 중이다.



그와 동시에 과거의 나의 말과 행동들을 돌이켜 반성해보기도 하고, 무심코 튀어나가려던 말들도 주워 담기도 한다.



어쨌든 모든 일은 자신이 겪지 않으면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제 3자의 시선이 무조건 옳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지금의 시간은 단 한 번 뿐이고, 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일지 모르는 지금을 허투로 쓰지 않겠다는 요즘 엄마들의 마인드를 겪어보지 않으면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가끔은 상황에서 한 발자국 멀리 벗어나 제 3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아이를 바라보는 습관이 꼭 필요하다. 과도하게 의존적인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랑하는 아이의 손을 가끔은 놓아줘야 잘 자란다.



당사자든 제 3자이든 누가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육아나 교육에 대해서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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