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입장이 아닌 학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본 교실
작년 이맘때쯤, 입학한 아이의 학교에서 날아온 가정통신문에 적혀있던 <학부모 총회 및 수업 공개 안내문>을 보고 한참이나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지난 십여년간 나는 그런 공개수업에 기재되어있는 교실에서 '공개 수업을 하는 교사'였지 그 수업을 '수업 공개 보는 학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다. 선생님들 간의 수업 공개가 있었지만 그 수업은 '선생님의 수업'을 바라보는 것이었지 그 수업 대상자가 나와 관련있는 인물을 아니었다.
스파이가 된 기분
직업이 초등교사인 경우, 두 가지로 나뉜다.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입학, 전학시켜 함께 출퇴근하는 경우와 주소지로 배정받은 학교에 보내는 경우이다(사립학교나 미인가 국제학교 제외). 나는 근무교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구설수에 오르고 눈치보이는 것이 싫어서 후자를 택했다. 집과 가까운 거리라 아이도 친구를 만들기 좋고, 또 엄마가 선생님이라는 꼬리표없이 편하게 다닐 수 있어 좋은 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근무하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남의 교실'에 들어가 40분동안 수업을 보고, '다른 학교의 교육 관련 정보'를 듣고, 다른 학교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님들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마지막으로 아이의 담임 선생님의 '학급 설명회'에 참석하라는 낯선 초대장이 도착했다.
1학년 때 '남의 담장'을 넘어 가는 것이 그리도 미묘한 기분인지는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초등교사는 5년을 근무하면 다른 학교로 배정받게 되는데, 다음 학교에 가서 이전 학교에 방문할 일은 전혀 없거니와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떠난' 공간이기 때문에 정말 낯선 기분을 느낀다. 그런데 한 번도 근무한 적도, 알지도 못한 학교에 들어가야 하다니 뭔가 내가 스파이가 되서 정보를 캐내려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여기는 이런 좋은 점이 있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미리 학부모 총회 참석 여부를 확인하고, 해당 학부모에게 라벨지를 배부한다. 라벨지에는 본교 학부모임을 알 수 있도록 하는 학교 마크 등을 넣는데 외부인이 들어올 수 없고, 한 아이에 한 명의 학부모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그런 것이 없고, 미리 배부된 이알리미의 특정 부분을 보안관 선생님께 보여주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참관록(수업을 보고 쓰는 일지) 역시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간단히 QR코드로 찍어 연결된 곳에 넣으면 되는 참신한 방법을 쓰고 있었다. 실제로 이런 점은 우리 학교 부장님께도 전달해서 우리도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어쨌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처럼 아이 공개수업을 와서는 다른 학교의 시시콜콜한 점들과 시설을 비교해보는 이상한 직업정신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남의 수업을 보는 기분
아이의 교실에 들어서며, 저 교실 앞이 내 자리(?)였는데 뒷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교실을 둘러싼 학부모들 사이에 서있자니 그 느낌 역시 기묘하고 이상했다. 마치 유체이탈한 듯 꿈을 꾸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느낀 점은 '내가 도대체 저 자리에 어떻게 선 것이었나'하는 점이었다. 막상 수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되어보니 그 자리가 무척이나 대단하고 용기있고 엄청나게 힘들어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작년에는 40분 수업 내내 어디를 바라봐야할지 몰라, 내 아이를 바라봤다가 칠판을 봤다가, 먼 산을 봤다가, 촬영금지인데 촬영을 40분 내내 하는 어떤 엄마를 노려봤다가(또 나온 쓸데없는 직업정신), 선생님을 슬쩍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면 '온전히 내 아이'의 수업을 바라보지 못하고, 뭔가 어설프게 시간이 흘러 아쉬움이 남은 공개수업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한 번 경험해서인지 제법 학부모 티가 나서, 40분 내내 우리 아이를 바라보고 선생님을 쳐다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노련한 선생님의 수업과 체계적인 아이들의 움직임이 신기해 나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고, 발표하느라 나와서 떨리는 목소리로 맡은 바를 다하는 아이와 친구들을 기특해하면서 온전히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또 쓸데없는 직업정신이 불쑥 나온 타이밍은 아무도 묻지않고 궁금해하지 않고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아이 담임선생님의 수업에서의 잘한 점과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문득 떠올린 바로 그때였다. 쉽게 말해 '나의 수업'을 반성하고 돌이켜보는 못난 나를 발견했는데, 아무리 사람은 모두에게 배울 점이 있다지만 도대체 왜 나는 아이 수업을 보러와서 '나'를 생각하는 것인가.
수업 시간이 마치고 교문으로 나서는 길. 아이를 교문에서 기다려달라는 선생님의 말에 정말이지 FM으로 수업이 마치자 마자 나왔건만, 어찌된 일인지 한참이나 나오지 않는 교실을 다시 보니 무언가 선생님이 칭찬하고 잘했다고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긴장이 풀린 듯 웃고 있었고,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떠들지 말라는 선생님의 이전 약속을 무척이나 잘 지키려 노력하는 중인 것 같았다.
왜 내가 피곤한거야
꾸안꾸룩을 찾기 위해 옷장을 너무 열심히 탐색해서인지, 혹여나 눈화장이 번질까봐 피부화장에 공을 들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의 수업이 마친 후에 이상하게 힘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아이는 얼마나 더 긴장했을까 하는 기분에 토닥여주며 칭찬도 많이 해줬다. 그리고 남의 학교가서 '나' 자신을 반성하는 유치한 행동을 한 내 자신에게도 작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애써 격려했다.
아이를 다른 곳에 보내고, 다시 교실로 돌아서서 스파이처럼 다른 학교 정보를 염탐하는 '학교 설명회'는 정말이지 학부모로서도 선생님으로서도 약간 지루하고 힘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교 자랑과 시설물의 변화, 특색사업을 설명하는데 또 근무교랑 다른 점을 비교해버리는 안타까운 내 자신을 억누르며 겨우 긴 시간을 참아냈다.
학부모 총회, 학급 설명회
보통 '학부모 총회'라고 하면 많은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시간은 바로 '학급 설명회'이다. 학교에 대한 소개와 부장님들이 전하는 학교를 향한 당부 등의 시간이 끝나면 온전히 담임선생님과의 대화시간이 남는다. 30분 남짓이지만 선생님들의 교육방향과 교육관 등을 알 수 있는 시간이라 이 시간을 위해 앞의 긴 시간을 버틴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선생님 이름만으로도 다양한 정보를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데, 그 선생님이 작년에 6학년을 했다던가, 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친절하다던가, 그 선생님은 학년에서 가장 무섭다던가 하는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저학년의 경우에는 그런 정보가 없을 뿐더러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와의 궁합과 케미'이기 때문에 너무 이전의 소문에 지레 겁먹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아이의 선생님은 완벽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아이들을 잘 잡아주는 선생님 유형인 듯 했다. 한 달 남짓 지났지만 아이들의 수업 태도나 학급 규칙이 거의 완벽하게 훈육되고 교육되어 보였다. 선생님의 말씀에도 본인의 교육관이나 교육 방식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고, 교육 경력에 있어서도 분명한 직업 의식과 사명감을 가진 분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초등교사를 하며 느끼는 바는, 아이들이 어떤 선생님이 되든 그 분에게 배울 점이 분명히 있고 또 어느 정도 이겨내거나 극복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 탓'을 하며 아이의 어떤 행동이나 방식이 맞지 않다고 거부만 할 것이 아니라 그래서 우리 아이가 '어떻게' 배워나가고 생활하면 좋을지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가족도 그러한데 다른 사람의 '단점'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한도끝도 없이 '싫은 점'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말이야
학부모 총회가 끝나면, 학부모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보통 학급 전체 연락처를 모아 단체 톡방을 만들고 티타임을 가지거나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계획한다. 그런데 그런 만남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바로 '선생님'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 가면 가시방석처럼 불편하긴 하지만, 함께 앉아있는 학부모들끼리의 공통 관심사가 '학급 일' 뿐이니 초반에는 거의 그쪽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정말이지 한가지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 나 역시도 늘 1년마다 이 문장들을 되내이는데, 정말이지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하고, 행동을 조심해야함을 학교에서 많이 느낀다. 나의 이야기와 소견, 느낌을 함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설(?)하지 말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나와 같이 생각할거라고 털어놓은 선생님이나 친구에 대한 속내, 남의 단점, 우리 아이의 흠, 가족 이야기는 구전 동화처럼 퍼져나가 당사자의 귀에 반드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음이 잘 맞아 빈번하게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누군가와 어떠한 일을 계기로 적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니 학부모라는 자리는 원래 고독함을 잘 이해하고, 사리분별을 잘해서 말조심을 해야한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진심이 누군가에게는 화살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