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만 해도 나도 남편도 아이도 어리다
학교 준비물로 '어린 시절'의 사진을 가져오라고 공지가 왔다. 물론 아이는 이미 지금도 충분히 어린 나이지만, 태어나서 유아기 시절과 1학년 그리고 2학년 사진을 가져오라는 설명이 추가되어 있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어리고
예쁠 때입니다.
그러니 아이와 시간을 많이 가져주세요.
해마다 학부모 총회에서 담임 선생님이 궁금해 찾아온 학부모들에게 하는 이 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흩어졌을지 몰라도, 잊을만하면 문득 머리에 되새기며 일상을 소중히 기억해왔다고 자신했었다.
그런데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려고 켠 아이의 앨범 파일을 보는 순간, 솔직하게 나는 그러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힘들다, 정신없다
날마다 수없이 내뱉곤 했던 나의 푸념들이 무색하게 사진 속에 아이는 너무나 예뻤고, 귀여웠고, 사랑스러웠다. 자주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도 웃는 미소가 예쁜 아이인 줄 나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사진을 보며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돌이켜 생각해보아도 나는 아이의 서너살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기억을 잊는다 했던 어른들의 말씀대로인지 아니면 기억할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 나의 뇌가 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이지 사진 속의 아이 모습과 동영상 속의 말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벚꽃이 예쁘다며 셔터를 눌러대지만 막상 머릿속에 남는 기억없이 지나치다, 아스팔트 바닥에 흩날려 뿌려진 꽃잎들을 보며 그제서야 이름다움을 깨닫는 어리석은 행동을 나는 매일 반복해온게 아닐까.
고등학생 아들있는 엄마 카카오톡 프로필이 갑자기 아들 어릴 때 사진으로 바뀌면 조심해야돼.
우스갯소리로 선배 엄마들이 해준 이야기 속에서 다 큰 사춘기 청소년을 키우며 이런 저런 일을 겪다가 무자비한 말다툼을 하고 나서, 화를 식히기 위해서나 자신의 무언가를 반성하며 하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카카오톡 프로필에 그 아이의 가장 예쁘고 귀엽던 시절 사진으로 바꾸는 거라고 했다.
지금은 손 닿을 곳에 있는 아이의 어린 시절과 사진이 어쩌면 몇 년이 지나 아련한 기억 속에 추억할 무언가라는 생각에 울컥 아이의 사진을 보며 눈물이 나려했다.
나도 볼거야. 같이 봐
내 무릎에 앉아 같이 사진을 고르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른거리는 어린 시절의 그 표정, 그 목소리가 같이 있어도 그리운 것은 참으로 미묘한 감정이었다.
가만히 자고 있는 모습도 교문 멀리서 나를 향해 뛰어오는 모습도 한정판 물건처럼 '지금 여기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왜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나는 이 귀여운 두 살 무렵 이 사진을 찍을 때 무척이나 지쳤고 지루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육아휴직을 하고 온종일 아이와 함께 하던 그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거란 것을 그때는 몰랐고, 나는 너무 어렸고 서툴렀다.
옛사진을 보며 그리워하며 나는 정말이지 지금은 아이를 눈 속에 많이 담으며 긍정적으로 행복해하자고 다짐한다. 언젠가 나는 지금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리워 돌아오고 싶은 순간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