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강치, 사라진 바다의 왕

by 글곧

바다에도 왕이 있었다. 동해의 차고 맑은 물속을 유유히 누비며, 독도의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던 독도 강치라 불린 독도 바다사자가 그 주인공이다. 몸길이 2.5미터, 몸무게 450킬로그램에 달하는 수컷은 그 위용만으로도 바다를 압도했다. 한때 독도 주변 해역에는 수만 마리의 강치 떼가 서식했다. 19세기 기록에 따르면 독도에만 약 3만 마리에서 5만 마리가 살았다고 추정된다. 조선 어민들은 이들을 ’가지어(可支魚)’라 불렀고, 독도는 ’가지도(可支島)’로 불리기도 했다. 강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독도라는 섬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 왕국은 20세기 초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졌다.


수탈의 기록 — 가죽을 위해 사라진 생명들

1904년, 일본인 사업가 나카이 요자부로는 독도에서의 강치 포획 사업권을 독점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청원을 올렸다. 그리고 이듬해인 1905년, 일본은 독도를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영토 침탈과 자원 수탈이 사실상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약 40년간 자행된 포획은 조직적이고 잔인했다. 강치는 가죽으로 가방과 벨트 등 피혁 제품을 만들고, 기름은 공업용과 등불용으로 쓰였으며, 수염은 안경테 재료로, 생식기는 한약재로 팔려나갔다. 일제 강점기 문헌에 따르면 1905년부터 1911년 사이 단 6년 만에 약 1만 4천여 마리가 포획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에도 포획은 계속되었고, 개체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30년대에는 독도에서 강치를 보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 되어버렸고, 194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자취를 감추었다. 마지막으로 독도에서 강치가 목격된 것은 1974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공식적으로 독도 강치는 멸종된 종이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우리는 역사적·지리적 근거를 꺼내 든다. 그런데 독도 강치의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증거다. 조선 어민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렸던 강치를 멸종까지 몰아간 것은, 다름 아닌 제국주의적 수탈의 민낯이었다.


독도 강치의 의미 — 기억해야 할 이름

독도 강치는 단지 멸종된 동물 목록에 이름을 올린 존재가 아니다. 그 멸종의 과정은 식민지배가 단순히 인간의 자유와 땅만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와 자연 유산, 그리고 그 땅의 기억까지 지워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치는 독도가 오랫동안 생명이 깃든 살아있는 섬이었다는 증거였다. 그 존재만으로도 독도가 조선인의 삶과 문화 속에 살아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독도 강치의 멸종은 단순한 생물 다양성의 손실이 아니라, 역사적 상처이며 지워진 기억이다.


바다에 아직 남은 친척들

그러나 강치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독도 강치가 속했던 바다사자과(Otariidae)의 친척들은 아직 세계 곳곳에 살고 있다.

놀랍게도 우리 바다에도 그 사촌이 살고 있다. 백령도 일대에는 점박이물범이 서식하는데, 비록 강치와 다른 종이지만 독도 강치와 같은 바다의 생태적 위치를 공유하며, 현재 300여 마리 정도가 백령도 해역을 중심으로 서식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이들을 보호대상 해양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인근 국가들로 눈을 돌리면, 일본 홋카이도와 쿠릴 열도 해역에는 큰 바다사자가 서식한다.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독도 강치의 가장 가까운 종으로, 분류학적으로 Zalophus라는 같은 속(屬)에 속한다. 러시아 극동 해역과 오호츠크해에서도 큰 바다사자의 개체군이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 러시아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들의 생태가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독도에 강치를 다시 — 불가능한 꿈인가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독도에 강치와 가장 유사한 종을 다시 들여와 살게 할 수는 없을까.

생태학적으로 독도는 여전히 강치류가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주변 해역의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바위 해안은 상륙과 번식에 유리하다. 독도 강치의 가장 가까운 근연종인 캘리포니아 바다사자는 현재 멸종위기에서 벗어나 개체 수를 회복하고 있으며, 이들을 독도에 시범 도입하는 방안을 생태 복원 차원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종간 생태적 적합성 연구, 해양 환경 영향 평가, 그리고 국제적인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더 현실적인 접근은 큰 바다사자의 자연 유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큰 바다사자는 이미 동해 북부 해역에 서식하고 있으며, 독도 주변에 출몰한 기록도 드물지 않게 보고된다. 독도 해역을 보호구역으로 강화하고, 인위적인 방해 요소를 줄인다면 자연적인 정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생태 복원은 단순한 자연보호 활동이 아니다. 독도에 강치류가 다시 서식하게 되는 날, 그것은 지워진 역사를 되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바위 위에서 햇볕을 쬐는 바다사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수탈로 빼앗긴 것들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과정의 상징이 될 것이다.

독도의 바람은 오늘도 분다. 언젠가 그 바람 속에서, 강치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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