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World Economic Forum의 한 연구는 우리가 오래도록 당연하게 여겨온 믿음에 질문을 던졌다. 오래 일하는 것이 과연 더 많은 성과를 보장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연구는 오히려 근무시간을 줄였을 때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뉴질랜드의 한 기업은 급여와 고용 조건을 그대로 둔 채 직원들에게 매주 하루의 추가 휴가를 부여했다.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생산성 하락을 우려했을 법하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생산성은 약 20% 상승했고, 직원들의 직무 만족도와 삶의 만족도 또한 개선되었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일의 밀도는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사람들은 덜 지쳐 있었고, 회의는 짧아졌으며, 집중은 깊어졌다.
이 사례는 단순한 제도 변화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라는 신호에 가깝다. 더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더 많이 창출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생각할 지점이 많다.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근무 문화가 뿌리 깊다. 그러나 OECD 통계에서 노동생산성은 상위권과 거리가 있다. 오래 일하지만 시간당 산출은 높지 않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나라로 그리스나 일본이 자주 언급된다. 일하는 시간은 길지만, 일의 구조와 방식, 전문성의 축적, 협업의 효율성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몇 해 전 네덜란드 연구원들과 항만 설계 프로젝트를 몇 주간 함께한 경험이 있다. 회의 시간은 한국보다 짧았고, 퇴근도 비교적 정확했다. 처음에는 느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즈음, 왜 그들의 시간당 보수가 더 높은지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항만 설계의 세부 공정, 물류 동선, 시뮬레이션 데이터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불필요한 토론은 줄이고, 핵심 판단은 빠르게 내렸다. 그들의 경쟁력은 오래 일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한 전문성과 노하우였다.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달랐던 셈이다.
결국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은 시간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시간당 창출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전문성을 키우고, 불필요한 절차를 줄이며, 조직이 개인의 역량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쉼’의 문제다. 2005년, 세계 랭킹이 100위 밖으로 떨어졌던 박세리가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퍼팅 연습을 하다 울음을 터뜨리며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아버지는 골프만 가르쳐 줬지, 쉬는 법은 알려 주지 않았어요.” 최고의 선수조차 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다.
연구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자신이 빠지면 일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책임감, 혹은 존재감에 대한 불안 때문에 쉬지 못하는 경우다. 그러나 진정으로 일을 잘한 사람은, 자신이 자리를 비워도 조직이 잘 굴러가도록 만들어 놓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을 남기고, 사람을 키워 놓은 사람이다.
우리는 흔히 “더 잘 일하기 위해 쉰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쩌면 순서가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잘 쉬기 위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삶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일은 수단이 되고 삶은 목적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무시간을 줄일 것인가 늘릴 것인가의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시간당 가치를 높이는 전문성의 축적, 조직의 효율적 설계, 그리고 쉼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