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짖음과 격려의 순서를 바꾸어 보는 일.

by 양창호

칭찬은 쉽다. 잘한 보고서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수고했다”는 말이 나온다. 성과가 기대치를 넘기고, 발표가 매끄럽게 끝나면 박수는 주저 없이 따라온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반대의 경우다.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는 늘 어렵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 한 장 짜리 요약보고서가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몇 주를 준비했다던 기획안인데, 막상 펼쳐보면 자료는 빈약하고 논리는 엉성하다. 발표자는 차분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가지만, 듣는 쪽에서는 아쉬움이 먼저 올라온다.


이 사람은 정말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최대한 당당한 태도로 방어막을 치고 있는 걸까? 실망스럽다는 말을 그대로 해야 하나, 아니면 다음을 기약하며 넘어가야 하나.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은 빠르게 계산한다.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알고 있다. 준비 시간이 부족했는지, 인력이 모자랐는지, 혹은 역량이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는지. 그래서 그들은 때로 더 당당한 표정을 짓는다. 결과가 모자란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사실에 짓눌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이때 직설적인 꾸짖음은 종종 효과보다 상처를 남긴다. 이미 스스로 자책하고 있는 사람에게 “왜 이것밖에 안 됐느냐”라고 덧붙이면, 그는 더 움츠러들 뿐이다. 위축된 상태에서 창의성과 실행력은 오히려 줄어든다. 일을 더 야무지게 해 달라는 목적과는 거꾸로 가기 쉽다.


한 번은 젊은 팀장이 큰 프로젝트를 맡았다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다. 그는 발표를 마친 뒤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다음번에는 더 보완하겠습니다.” 그 말속에는 이미 자책과 반성이 담겨 있었다. 그날 나는 세부적인 지적 대신, “이번에 고생 많았다. 네가 이 일을 맡아 끝까지 끌고 간 건 의미 있다. 다음엔 우리가 인력 배분을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말했다. 몇 달 뒤, 그는 더 큰 과제를 훨씬 안정적으로 수행해 냈다. 그때의 격려가 면죄부가 아니라 기회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꾸짖음이 더 효과적인 순간은 오히려 성과가 잘 나왔을 때일지도 모른다. 큰 계약을 따냈다거나, 목표를 초과 달성했을 때 사람은 쉽게 도취된다. 승리의 열기 속에서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때 “좋다, 그런데 이 부분은 놓쳤다”라고 짚어주는 말은 상처가 아니라 균형이 된다. 성취의 기쁨이 완충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적은 크게 아프지 않다. 오히려 다음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


인사 조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성과가 낮은 사람을 교체하는 일은 분명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조직의 목적은 성과를 내는 것이고, 더 적합한 사람이 그 자리를 맡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인사라는 수단만으로 성과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종종 조직에 불안과 냉소를 남긴다. “결과가 안 나오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신호는 단기적 긴장은 만들지만, 장기적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했다. 반듯하고 곧은 재목은 베어 가지만, 굽은 나무는 남아 숲을 지킨다는 뜻이다. 조금 모자라 보이는 사람도, 기회를 주고 기다리면 뜻밖의 성과를 내는 경우가 있다. 그가 가진 다른 강점이 시간이 지나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이번에는 인사를 유예하겠다. 대신 다음을 기대한다”는 메시지가 교체보다 강한 신호가 되기도 한다. 격려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책임을 전제로 한 신뢰의 표현일 수 있다.


이 태도는 인사권자 자신에게도 유익하다. 조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꾸짖음을 당한 직원이 아니라, 아무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위치에 선 사람일 수 있다. 모든 결정이 내 뜻대로 움직이고, 나를 견제할 장치가 없을 때 권력은 쉽게 폭력으로 변한다. 격려를 선택하는 일은 타인을 살피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경계하는 일이기도 하다.


칭찬은 쉽지만, 부족함을 품는 격려는 어렵다. 결국 조직 운영은 감정과 이성의 미묘한 균형 위에 서 있다. 잘했을 때는 차분히 짚어 주고, 못했을 때는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것이 꾸짖음과 격려의 순서를 바꾸어 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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