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돈가스와 돼지불백
사람에게는 저마다 ‘맛의 주소’가 있다. 단순히 음식이 맛있었던 장소가 아니라, 그 음식을 먹던 시절과 함께 기억 속에 박혀버린 좌표. 성북동은 내게 그런 곳이다. 삼선교 사거리에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옛날 버스 종점이 있던 자리 바로 위에 기사식당이 하나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길 건너편에 왕돈가스 집이 있다. 두 집 모두 간판이 요란하지 않다. 그럼에도 수십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래된 맛집이 살아남는 것은 홍보 때문이 아니라 기억 때문이라는 것을, 이 두 집이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왕돈가스 집의 돈가스는 크다. 접시를 가득 채우는 크기인데, 30여 년 전 당시 서울 어디를 뒤져도 이만한 돈가스를 내놓는 집은 쉽게 찾기 어렵다. 특이한 것은 소스다. 따로 곁들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브라운소스가 이미 듬뿍 뿌려진 채로 상에 오른다. 처음 오는 손님이라면 잠깐 당황할 수도 있다. 소스의 양과 종류를 스스로 조절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소 일방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평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크기에 압도되어 잔소리할 틈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소스가 실제로 맛있기 때문이거나.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이 집을 드나들었다. 그 아이들이 이제 마흔이 되었으니, 족히 삼십 년이 넘은 인연이다. 당시 아이들은 돈가스 한 판을 다 비우지 못해 남기곤 했고, 나는 그 남은 것까지 먹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왕돈가스 집은 음식점이라기보다 일종의 의식 같은 곳이었다. 그냥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갔고, 갈 때마다 아이들이 기뻐했고, 그 기쁜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아서 또 갔다. 소스가 뿌려져 나오든 말든,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기사식당으로 더 잘 알려진 돼지불백 집은 조금 다른 종류의 만족을 준다. 자리에 앉으면 주문을 하기도 전에 상이 차려진다. 상추, 빨간 양념을 한 생마늘, 풋고추, 쌈장, 김치. 반찬이 푸짐하게 먼저 나오는 것은 기사식당 특유의 방식이다. 빠르게 먹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오랜 시간 동안 이 집의 문화가 된 것이다.
돼지불백은 식당 안 별도의 공간에서 연탄불에 직접 구워 낸다. 스테인리스 접시에 담겨 나올 때는 가장자리가 거뭇거뭇하게 그을려 있다. 연탄불 특유의 냄새와 함께. 간장 양념이 불기를 만나 살짝 캐러멜화된 그 맛은, 가스 불이나 숯불로는 완전히 흉내 내기 어렵다. 상추 한 장에 불백 한 점과 생마늘을 얹어 한 입에 넣는 순간은, 설명이 필요 없는 종류의 만족이다.
나는 이 집에 둘이 가서 3인분을 시킨다. 혼자 두 접시를 거뜬히 비울 수 있을 만큼의 양이기 때문이다.
어느 음식 연구가는 한국의 오래된 식당들이 살아남는 이유를 단순히 맛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단골이 형성되는 것은 맛의 일관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식당이 자신의 삶의 어느 시간과 겹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음식은 미각을 자극하지만, 기억은 훨씬 더 복잡한 감각을 건드린다.
장위동에 살던 시절, 이 두 집은 생활권 안에 있었다. 잠깐이면 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분당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야만 갈 수 있는 먼 거리다. 성북동까지 돼지불백을 먹으러 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 그러니 자주 가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씩, 특별한 이유도 없이 간장 양념이 연탄불에 그을리는 냄새가 어른거릴 때가 있다. 그것은 배고픔이 아니다. 그 시절에 대한 일종의 그리움이다.
‘비자발적 기억’이라는 말이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냄새나 맛이 먼저 과거로 손을 뻗는 것. 성북동 돼지불백이 가끔 어른거리는 것도 아마 그런 것일 테다. 불백 자체를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던 시간으로 잠깐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장위동의 골목, 아이들과 함께였던 식탁, 집사람과 둘이서 3인분을 시키던 그 가벼운 사치.
맛집은 음식으로 유명해지지만, 오래된 맛집은 기억으로 살아남는다. 성북동 왕돈가스 집의 소스는 여전히 이미 뿌려져 나올 것이고, 기사식당의 연탄불은 여전히 불백을 거뭇하게 구워낼 것이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먹으러 가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