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슈하스까리아

고기와 함께 먹는 행복

by 글곧

소의 나라, 브라질

브라질 인구가 2억 1천2백만 명인데, 소 사육 두 수도 이와 비슷한 2억 1천3백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대부분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소고기 값이 무척 싸다. 브라질 사람들의 주식이 바로 이 소다.

2019년 상파울루 출장에서 처음 이 사실을 알았다. 현지 직원이 나를 슈퍼마켓에 데려갔을 때였다. 정육 코너의 규모에 압도당했다. 한국 대형마트 정육 코너의 서너 배는 되어 보였다. 온통 소고기뿐이었다.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구석에 조금 있을 뿐이었다.

“브라질 사람들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소고기를 먹나요?”

“매일 먹죠. 아침, 점심, 저녁 중 최소 한 끼는 소고기예요.”

가격을 보고 놀랐다. 안심이나 등심 같은 최상급 부위도 1kg에 50 헤알(15,000원) 정도였다.

“왜 이렇게 싸요?”

“땅이 넓으니까요. 브라질 국토 면적이 851만 제곱킬로미터인데, 그중 목초지가 20%예요. 남한 면적의 17배나 되는 목초지에 소를 풀어놓고 키우니까 사료 비용이 거의 안 들어가죠.”

실제로 브라질은 세계 최대 쇠고기 수출국이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쇠고기 수출량의 21%를 차지한다. 중국, 홍콩, 미국, 이집트 등으로 매년 200만 톤 이상을 수출한다. 브라질 경제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8%에 달한다.


슈하스까리아, 꼬챙이에 꽂힌 고기의 향연

팔뚝 길이보다 긴 쇠꼬챙이에 소고기를 꽂아 숯불 화덕 옆에 열 시간 이상씩 두어 그 열로 구워지고 기름을 빼서 만든 요리이다.

브라질리아에 있는 전문식당을 가 볼 기회가 있었다. 현지 직원은 “브라질에 왔으면 슈하스까리아는 꼭 가봐야 한다”며 예약해 둔 곳이었다. ‘Fogo de Chão’라는 간판의 식당. 나중에 알고 보니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체인점 중 하나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압도당했다. 식당 중앙에 거대한 화덕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 1미터가 넘는 쇠꼬챙이들이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꼬챙이마다 소고기 덩어리가 꿰어져 있었다. 숯불의 열기가 고기를 서서히 익히고 있었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기 굽는 냄새가 식당 전체를 가득 채웠다.

“저 화덕에서 10시간 이상 천천히 익힙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익죠. 기름은 다 빠지고요.”

주방장이 설명해 주었다. 화덕 온도는 섭씨 200~250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너무 높으면 겉만 타고, 너무 낮으면 육즙이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10시간 동안 계속 돌려가며 굽는다. 하루에 200kg 이상의 고기를 이 방식으로 굽는다고 했다.


무한리필의 천국

간단한 야채를 가져와 먹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고기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고기를 꽂은 꼬챙이를 가져오면 부위를 물어보고 간단히 한두 조각만 맛보기로 먹어본다.

우선 샐러드 바에서 야채를 가져왔다. 상추, 토마토, 양파, 올리브, 치즈, 과일 등 30가지가 넘는 식재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브라질식 검은콩 요리인 페이조아다(Feijoada)와 감자 샐러드, 파스타도 있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야채를 조금만 담았다. “고기 먹을 배를 남겨둬야죠.” 함께 간 브라질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샐러드를 먹고 있는데 종업원이 왔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잘생긴 남자 종업원들이 각기 다른 부위를 가져와 얇게 베어 내준다.

첫 번째 종업원이 1미터짜리 꼬챙이를 들고 왔다.

“삐깐야(Picanha)입니다.”

내 접시 위에 긴 칼로 고기를 얇게 썰어주었다. 두께 5mm 정도. 겉은 갈색으로 바삭하고, 속은 분홍빛이 감도는 미디엄이었다.

입에 넣자 육즙이 터졌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다. 소금 간만 되어 있었는데, 고기 본연의 맛이 진했다. 한국에서 먹던 어떤 소고기보다 맛있었다.

두 번째 종업원이 왔다. “꾸삥(Cupim)이에요.” 소등의 혹 부분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보는 부위였다. 먹어보니 기름기가 적당히 섞여 있으면서도 텁텁하지 않았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세 번째, 네 번째… 종업원들이 계속 왔다. 꼬스뗄라(갈비), 삘레(등심), 릴레 미그농(안심), 프랄다(양지), 맘마(치마살)… 한 순번이 다 돌고 나면 부위별 맛을 비교할 수 있다.

10분마다 한 번씩 종업원들이 순환했다. 같은 부위를 다시 가져오기도 했다. 그중에서 맛있는 부위를 가져오는 경우만 베어 달라고 하고 그 이외의 것은 과감히 물리친다.

“아니요, 괜찮아요.” 손을 저으면 종업원은 웃으며 다음 테이블로 갔다. 거절해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 것만 드세요”라고 격려했다.


브라질 최고의 부위들

브라질 사람들은 쇠고기에서 삐깐야(Picanha)를 최상으로 친다. 엉치뼈와 붙어있는 엉덩이살(upper lump)로 매우 부드러운 육질 부위다.

삐깐야는 브라질 쇠고기 문화의 상징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부위인데, 브라질에서만 특별 대우를 받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방과 살코기의 비율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함께 간 현지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삐깐야의 핵심은 위쪽에 있는 지방층입니다. 이 지방이 구워지면서 살코기로 스며들어 육즙을 만들죠. 한국의 삼겹살처럼 지방이 많지도 않고, 안심처럼 퍽퍽하지도 않아요. 딱 중간이에요.”

실제로 먹어보니 그 말이 맞았다. 씹으면 육즙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느끼하지 않았다. 삼키고 나면 고소한 뒷맛이 남았다. 이해가 됐다. 왜 브라질 사람들이 이 부위를 최고로 치는지.

그다음으로 꾸삥(Cupim)이라고 해서 소등 쪽의 혹 부분이다. (브라질 소는 이 혹이 다 있다)

이 부분을 설명해 준 종업원은 특히 자랑스러워했다. “브라질 소는 제부(Zebu) 품종이에요. 인도 소와 유럽 소의 교배종이죠. 더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등에 혹이 있어요. 이 혹은 지방과 근육 조직이 섞여 있어서 독특한 식감이 나요.”

꾸삥은 오랫동안 천대받던 부위였다고 한다. 질기고 기름기가 많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장시간 저온에서 구우면 지방이 녹아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발견한 후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지금은 삐깐야 다음으로 비싼 부위다.

다음이 꼬스뗄라(Costela)라 하는 갈빗살 부위이고, 삘레(File)라 하는 등심 및 안심이 있다.

꼬스뗄라는 한국의 갈비와 비슷하지만, 조리법이 다르다. 한국은 양념에 재워 직화로 빠르게 굽지만, 브라질은 양념 없이 장시간 굽는다. 뼈에서 고기가 쉽게 떨어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삘레 미그농(안심)은 가장 부드러운 부위다. 씹을 필요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았다. 하지만 육즙은 삐깐야만 못했다. 지방이 거의 없어서 다소 담백했다.


나만의 취향 발견하기

개인적으로는 삐깐야와 삘레 미그농(안심)이 제일 맛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가 잘 먹는 갈빗살은 맛이 좀 떨어진다. 우리가 갈비를 제일로 치는 것은 얼리지 않은 삐깐야와 안심을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함께 간 한국 동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떤 이는 꾸삥을 최고로 쳤고, 어떤 이는 꼬스뗄라를 좋아했다. 각자의 취향이 달랐다.

나는 삐깐야를 세 번이나 더 받아먹었다. 종업원이 웃으며 말했다. “브라질 사람이시네요.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이 삐깐야를 제일 좋아해요.”

한국에서는 갈비를 최고로 친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먹어보니 갈비는 중간 정도의 등급이었다.

왜 한국에서는 갈비를 최고로 칠까? 생각해 보니 한국에는 신선한 삐깐야가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수입 쇠고기는 대부분 냉동이고, 부위도 제한적이다. 삐깐야 같은 특수 부위는 수입량이 적어 일반인은 먹기 어렵다.

반면 갈비는 한국 한우에서도, 수입 소에서도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다. 게다가 한국식 양념 갈비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조리법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갈비가 최고 대접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제대로 된 삐깐야와 안심을 먹어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아, 쇠고기에도 이런 맛이 있구나.’ 한국에 돌아가면 삐깐야를 파는 곳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금과 버리는 문화

고기를 구울 때 왕소금을 듬뿍 뿌려서 굽기 때문에 처음으로 잘라주는 바깥쪽 부분은 매우 짜다. 그게 싫으면 두 번째 잘라주는 것부터 먹으면 된다.

처음 삐깐야를 받아먹었을 때 깜짝 놀랐다. 너무 짰다. 바깥쪽 표면에 소금이 하얗게 보일 정도였다. 종업원이 웃으며 설명했다.

“첫 번째 조각은 좀 짜요. 소금으로 코팅해서 구우거든요. 두 번째 조각부터는 괜찮아요.”

왜 이렇게 소금을 많이 뿌릴까?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소금이 고기 표면에 막을 형성해 육즙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또한 소금의 짠맛이 고기의 단맛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일종의 조리 기법이었다.

나도 두 번째 조각부터 받았다. 짠맛이 적당했다. 소금 간만으로도 충분히 맛있었다. 한국에서는 소스나 양념이 필수인데, 브라질에서는 충분했다. 고기의 질이 좋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특이한 것은 테이블 가운데 여분의 큰 접시가 놓여 있는데 이 용도는 먹다가 먹기 싫은 고기를 버리는 접시이다. 너무 많아서 버리고 조금 기름이 섞여있다고 버리고, 입맛에 맞지 않다고 버리고 그러다 보니 썰어 받은 고기의 반은 먹고 반은 버리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접시의 용도를 몰랐다. 한국 동료가 고기를 그 접시에 놓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왜 버려요? 아까운데.?“ ”기름기가 너무 많아서요. 먹다가 느끼해졌어요.”

옆 테이블을 보니 브라질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받은 고기의 절반 가까이를 버렸다. 지방 부분이 많은 조각, 너무 익은 조각, 맛이 없는 부위 등을 가차 없이 버렸다.

한국 사람인 나는 음식을 버리는 것이 불편했다. 어릴 적 “밥 한 톨도 남기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현지 직원이 설명해 주었다. “여기서는 당연한 거예요. 무한리필인데 맛없는 걸 억지로 먹을 필요가 없죠. 맛있는 것만 골라 먹는 거예요.”

나도 결국 적응했다. 기름기가 많은 부분은 버리고, 맛있는 부위만 더 받아먹었다. 그러니 더 많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배가 부르지 않고, 속이 편했다.


어머니 날의 축복

브라질리아에서 잘한다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는데 하필 이날이 어머니 날이었다. 브라질에서는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 날(Dia das Mães)이다. 이날 자녀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외식하는 것이 전통이라 한다. 어머니들을 모시고 온 사람들로 길게 줄을 서야 했다.

예약을 했는데도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주변 사람들을 관찰했다. 어머니들은 모두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를 곱게 손질했다. 자녀들은 어머니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손주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졸랐다. “할머니, 배고파요. 언제 들어가요?” 분위기가 따뜻했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었다.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자리에 앉으니 식당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종업원들이 테이블을 돌며 “어머니 날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했다. 어떤 테이블에서는 케이크를 가져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어머니 생일과 어머니 날이 겹친 모양이었다.)

옆 테이블의 60대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녀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자녀들이 일제히 일어나 어머니를 안았다. 손주들도 따라 일어나 할머니를 안았다. 우리 테이블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한 축하하고 축하받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맛본 음식이라 그런지, 슈하스까리아를 생각할 때마다 소고기의 새로운 맛과 어울려 즐거운 음식으로 떠올려진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 가족이 함께 모여 웃고 떠드는 행복, 축하와 감사가 넘치는 분위기… 이 모든 것이 음식의 맛에 스며들었다.


슈하스까리아가 남긴 것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브라질을 다시 갈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가끔 슈하스까리아가 그립다.

서울에도 브라질 고기 전문점이 몇 곳 생겼다. 한번 가봤다. 시스템은 비슷했다. 하지만 맛은 달랐다. 고기가 냉동이었고, 브라질만큼 부드럽지 않았다. 분위기도 브라질만큼 따뜻하지 못했다.

실망하고 나왔다. ‘역시 브라질에서 먹어야 제맛이구나.’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고기의 맛만이 아니라는 것을. 브라질리아의 그날 저녁, 어머니 날의 따뜻한 분위기, 가족들의 웃음소리, 축하와 감사가 넘치던 그 순간… 그것이 진짜 그리운 것이었다.

창현방에 앉아 이 글을 쓰면서도 입에 침이 고인다. 삐깐야의 육즙, 소금의 짠맛, 숯불의 향… 하지만 무엇보다 그립운 것은 그날의 행복이다. 음식과 사람과 사랑이 하나가 되었던 그 순간.

슈하스까리아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최고의 음식은 최고의 재료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쁨과 감사 속에서 먹을 때, 그 음식은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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