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ge May 17. 2020

할아버지 학교

코로나 19로 인해 초등학교 다니는 손주들을 돌봐주고 있다. 친 손주가 손녀와 손자 2명이고 외손녀 1명 등 모두 3명이다. 아들네와 딸네가 인근에 살고 있어, 자연스럽게 손주들 모두 모일 수가 있었다.


3월 초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몇 달이 지났다. 6월이 되어 간신히 등교를 시작했지만 그나마도 주 1회 등교란다. 아무래도 2020년 1학기에는 이 아이들 할아버지 학교에서 대부분을 지내야 할 것 같다. 집사람은 온라인 수업, 점심과 간식을 책임지고 나는 온라인 수업과 독서 및 영어를 책임지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자 녀석은 지각 입학 때문에 학교 등교를 아직 낯설어한다. 대부분의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들으면서 온라인 수업이 학교 등교보다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듣는 EBS 방송이 지루해서일까? 눈은 TV에서 멀어지고, 몸과 마음은 장난감과 놀이에 가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외손녀와 3학년인 친손녀는 그래도 의젓하게 노트북에서 e학습터를 켜고 출석 체크하고 과목별 수업과 과제를 해가고 있다.


점심을 먹이고 나서 2시간 가령 함께 놀도록 하는데, 아이들은 이때가 제일 즐거운 모양이다. 그림도 함께 그리고, 태블릿도 함께보고, 이유 없이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논다.


오후에는 독서나 학습지를 하고 나서 영어나 수학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따라 하다가 이내 지겨워하면서 풀이 죽어 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때가 제일 난감하다. 공부 과목을 바꿔보기도 하고, 과제량을 줄여주기도 하고, 달콤한 것을 간식으로 주기도 한다.


막내 손자는 할아버지한테 노골적으로 반항한다. 왜 할아버지는 공부시켜놓고 코를 골고 자고 있나요? 우리는 공부하는데 왜 뭘 혼자 잡수세요? 배 좀 빼세요 하면서 조그만 주먹으로 배를 툭툭 친다. 공부시키는 게 못마땅한 것이다. 고양이처럼 눈을 흘기면서 반항적으로 아주 빠르게 아무 대답이나 한다. 성급하게 말하고 성급하게 행동해서 손해 볼 수 있는 성격이다.


외손녀는 평소 혼자 지내다 보니 웃음이 적은 아이였다. 사촌들과 가깝게 지내는 기회가 많아지자 웃음꽃이 만개했다. 그동안 책을 거의 안 보았는데 언니와 동생이 책 보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책을 펴 본다. 사촌들이 한글 타자 연습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쳐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함께 지내야 샘을 내면서 함께 크는 것 같다. 수줍어하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랑받으려 하는 강아지 같다.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입기가 쉬울 수 있어 걱정이다.


세명 중에 맏인 친손녀는 의젓하다. 끈기도 있고, 책임감도 있다. 이미 만 3살 이전에 한글을 읽기 시작했으니 나름 영재(?)라 해야 하나?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특히 좋아한다. 아빠가 책을 사 오면 그날로 두 번 정도 완독을 한다. 그려 오린 캐릭터를 백 명 넘게 데리고(?) 다닌다. 아주 의젓해서 다 큰 녀석으로 생각하지만, 할머니와 하루 저녁 떨어질 때마다 눈물을 보이고, 서운하면 방이 들어가 숨어버리는 모습에서 아직 애기 티가 난다. 큰 눈을 껌벅이다가 가끔 음메 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황소처럼 끈기 있고 영리한 아이다. 그러나 때로는 영악하게 살아야 할 필요도 있는데 그러려면 고운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년이 다른 아이들을 같은 공간에서 공부시키다 보니 장점도 단점도 있다. 장점은 상대적으로 공부습관이 잡혀 있지 않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함께 공부하면서 정한 시간 동안 공부를 규칙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부량이 많은 초3 손녀는 동생들과 같이 놀고 싶은 생각에 자기만 왜 더 공부해야 하는지 불만이 높아지는 것 같다.


손주들과 이렇게 오래 함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지만, 이유야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무엇에 흥미를 갖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떻게 하면 동기를 갖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즐겁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온양에 계시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서운 표정, 느릿느릿한 말투, 밥상에서 훈계 등만 남아 있을 뿐이다. 뒷짐 지고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 정도만 기억에 있을 뿐, 안아주고 함께 놀아준 기억이 없다.


이번 기회에 이 아이들에게 공부도 시키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대해 훈계도 하겠지만. 함께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고, 놀이에서 놀잇감도 되어 주어, 이 아이들 기억에 친구 같은 할아버지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주전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