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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e May 23. 2020

김치말이와 온반

부모님과 함께 먹던 음식과 그 맛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두 분을 떠올리게 한다. 전쟁통에 이북에서 남쪽으로 와 살게 된 부모님은 이북 음식이 유일한 고향과의 끈이었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자주 먹던 이북 음식은 김치말이와 온반이다.


김치말이는 추운 겨울밤에 밤참으로 만들어 추위에 덜덜 떨며 이가 부딪치도록 먹어야 제맛이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그러니까 거의 50년 전 겨울은 지금보다 더 추웠고 당시 가옥구조도 더 추울 수밖에 없었다. 겨울밤에 찬밥에 말은 김치말이를 먹으니 더 추울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김치말이를 밤참으로 만들 때는 아버지 드시라고 만든다. 그러나 엄마는 나와 여동생들도 먹을 수 있게 양푼으로 하나 가득 만들었다. 빼꼼히 쳐다보고 있던 우리들은 아빠가 와서 먹어라 하면 이내 숟갈 하나씩 들고 양푼으로 다가가 밤참을 퍼먹곤 했다. 조용히 자야 했던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앉아 왁자지껄하게 먹을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된 시간이었다.

김치말이를 만드는 방법은 이름처럼 간단하다. 찬밥을 준비한 후, 김장김치를 독에서 꺼내 쫑쫑 썰어 준비하고, 김치 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적당량씩 섞은 후 물이나 육수를 넣어 간을 맞춘다. 밥에 김치와 김치 국물을 함께 넣은 후, 여기에 두부 1모를 양손으로 으깨 넣으면 된다. 아버지는 여기에 얇게 썬 실 무말랭이 무친 것을 꼭 함께 넣으셨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넉넉히 넣어주면 완성이다.


김치말이를 따뜻한 아파트에서 먹어서 그런가, 분명 만드는 방법은 같은데, 요즘 만들어 먹는 김치말이는 어려서 먹던 그 맛처럼 짜릿하지가 않다. 억지로 눈감고 자야 하는 압박에서 벗어나 여동생 3명과 함께 파자마 파티하듯 신나는 분위기에서 먹던 김치말이 맛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 이북 음식은 온반이다. 김치말이가 서민스러운 음식이라면 온반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고급 음식이었다.


온반은 밥에 꿩이나 닭 또는 쇠고기를 고아 우려낸 국물을 부어먹는 장국밥으로, 찢은 삶은 고기 등을 고명으로 올려 먹는다. 이제는 제법 알려져 온반을 파는 음식점들도 많이 생겼다. 반가운 마음에 여러 번 먹어 보았지만, 이북식 온반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장국밥인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 고향은 평안북도 안주, 그리고 엄마 고향은 평안남도 개천이지만 청천강을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인근 동네라 그런지 두 분 식성도, 그리고 좋아하시는 음식도 비슷했다. 두 분이 이남에서 중매로 만나 결혼하셨는데, 고향이 서로 가까워 그거 하나 보고 결혼했다고 까지 말씀하셨다.


온반은 국물 간과 고명이 중요하다. 보통 소고기 양지를 삶아 국물과 고기 고명을 만들지만, 이북에서는 주로 산에서 잡아 온 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국물에 간은 조선간장으로 하는데 그 국물 맛은 장맛이 좌우한다. 한 번은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온반을 대접했는데, 썩 맛있게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얼른 맛을 보았더니, 영 다른 맛이었다. 장맛이 변해 그렇게 되었다.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큰 독에 있던 10년을 훨씬 넘긴 장맛이 변한 것이다. 그때 그 아까운 장을 다 버렸다.


온반 고명은 두부를 부쳐 길게 썰어 양념한 것과 국물 내고 건져낸 소고기 양지를 길게 찢어 조선간장 양념에 무친 것, 그리고 표고버섯을 볶아 양념한 것을 사용한다. 언젠가 평양에서 우리 대통령에게 대접한 온반 사진을 보니 작은 녹두 지지미를 한 장 올려놓았던데, 우리 집에서는 명절 때 녹두 지지미를 한 광주리씩 만들어 먹기는 해도 온반에 올리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먹는 방법이다. 밥 위에 고명을 올리고 국물을 붓는데, 고명이 잠기지 않을 만큼만 부어준다. 고명을 처음부터 국물에 모두 섞어 국처럼 먹으면 맛있게 양념해서 무친 고명 고유의 맛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엄마는 고명을 국물에 풀어 먹으면 그 맛이 삭는다고 말했다. 한쪽부터 고명 위에서 아래로 파서 국물과 함께 먹게 되면, 고명을 오랫동안 살려두며 먹을 수 있다.


다행히도 집사람이 김치말이와 온반 맛을 잘 전수받았다. 먼저 돌아가신 엄마 대신에 집사람이 아버지께 이 음식들을 해드리곤 했는데, 엄마가 해준 것과 맛이 똑같다고 항상 고마워하셨다.


지금도 이 음식들을 가끔 만들어 먹는데, 재료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음식을 먹으면서 엄마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던 이북 고향에 대한 이야기가 새록새록 떠올려진다. 음식 맛은 엄마의 품처럼 평생을 간다. 음식은 정말로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시키며, 기억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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