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지는 태능 숯불갈비

by 글곧

1970년대 초, 서울 동북쪽 끝자락 태능 일대에는 뜻밖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육군사관학교로 향하는 너른 길 왼편, 계절마다 향이 달라지던 배밭 사이로 하나둘 돼지갈빗집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봄이면 흰 배꽃이 흐드러졌고, 여름이면 짙은 잎사귀 사이로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그 사이사이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숯 타는 냄새와 달큰한 양념 향이 섞여 길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사람들은 그곳을 자연스럽게 ‘태능 갈비촌’이라 불렀다. 특히 배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집들이 많아 ‘배밭갈비’라는 이름도 붙었다. 돼지고기 양념에 이곳 명물인 먹골배를 갈아 넣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곳의 갈비는 달랐다는 점이다. 고기의 결이 곱고 육즙이 풍부했으며, 양념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단맛이 감돌았다. 무엇보다도 숯불에 구워 먹는 방식이 특별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고깃집에서는 연탄불을 사용하던 시절이었기에,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던 돼지갈비는 어딘가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음식처럼 느껴졌다.

1980년대, 장위동에 살던 나는 아직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그곳을 자주 찾았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길가에 늘어선 간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태능 솔밭갈비’, ‘태능갈비’, ‘공릉동 갈비’…. 저마다 원조임을 내세웠지만, 공통점은 모두 숯불과 돼지갈비였다. 어느 집을 들어가도 커다란 화로 위에서 숯이 붉게 달아오르고, 그 위에 올려진 갈비가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아이들은 고기 굽는 연기 속에서 연신 콜라를 찾았고, 나는 집사람과 마주 앉아 아이들 입에 고기를 잘라 넣어주느라 분주했다.

배밭 사이로 난 흙길을 잠시 걸으며 꽃을 구경하던 기억도 난다. 아이들은 떨어진 배꽃을 주워 들고 장난을 쳤고, 식당 안은 늘 왁자지껄했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더욱 단단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도시개발의 바람이 태능 일대를 휩쓸었다. 갈비촌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었다. 불암동, 남양주 별내, 구리 담터, 수락산 자락, 심지어 장위동 근처로까지 뿔뿔이 흩어졌다. 전두환 대통령이 육사를 방문했다가 길 옆에서 피어오르는 돼지갈비 연기와 냄새를 보고 정비를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실제로 일부 업소는 그린벨트 훼손이나 농지 전용 문제로 행정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배밭 갈비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세월은 흘러 지난 7월 1일, 주말을 맞아 나는 구리 담터에 있는 태능숯불갈비집을 찾았다. 이 집 역시 옛 태능 갈비촌에서 장사를 하던 분이 1990년대 초 이곳으로 옮겨와 다시 시작한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담터 일대마저 신도시 개발로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7월 2일까지만 영업하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80년대의 기억을 간직한 또 하나의 장소가 또다시 멀어진다는 생각에, 지인들과 약속을 잡아 서둘러 찾아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숯 냄새가 먼저 반겼다. 테이블 위 화로에 숯을 올리고 불을 붙이는 장면, 집게로 갈비를 뒤집는 소리, 양념이 타며 풍기는 달큰한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지인들은 “요즘도 이런 맛이 있네” 하며 감탄했다. 그러나 내게는 단순한 맛 이상의 것이 있었다.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40여 년 전의 풍경이 스치듯 떠올랐다. 아이들 손을 잡고 들어서던 그날, 배꽃 흩날리던 길, 고기를 굽느라 분주하던 젊은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엇보다 집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푸릇푸릇하던 얼굴, 고기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수줍은 듯 손으로 입을 가리던 그 모습. 지금은 어느새 완연한 할머니가 되었지만, 갈비를 앞에 두고 웃는 표정만큼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수줍게 입을 가리지는 않지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며 웃는 모습 속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온기가 남아 있다.

맛은 단순히 혀끝의 감각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문을 여는 열쇠다. 갈비 한 점에 담긴 달콤한 양념과 숯불 향은, 바쁘게 아이를 키우던 젊은 날의 분주함과 그 속의 행복을 고스란히 불러낸다. 그때는 여유가 없다고 느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충만한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날 우리는 정신없이 갈비를 구워 먹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몇 인분을 추가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계산서를 받아 들고 보니 식대가 꽤 나왔다. 지인들은 웃으며 “오늘 제대로 먹었다”고 했다. 나 역시 웃었지만, 사실 내가 먹은 것은 고기만이 아니었다. 사라져 가는 장소와 함께 흩어질 뻔한 기억들을, 한 점 한 점 다시 씹어 삼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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