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

by 양창호

2017년 12월에 시작된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에 접속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러 은행의 휴면계좌를 조회해 보았더니, 한 은행 계좌에 1997년 이후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60여만 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숫자는 작았지만, ‘1997’이라는 연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돈보다 시간이 먼저 떠올랐다.


1997년이라면 외환위기의 한복판이었고, 세계의 기술 기업들 또한 부침을 겪던 시절이다. 그 무렵 Apple의 주가는 1달러 아래까지 떨어졌고, 파산설까지 돌았다. 지금은 200달러를 훌쩍 넘는 기업이 되었으니, 만약 그때 그 60만 원으로 애플 주식을 사 두었다면 어땠을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억대의 숫자가 나온다.


국내로 눈을 돌려도 비슷하다. 1997년 삼성전자의 주가는 3만 8천 원 수준이었다. 2018년 주식 분할 이전 기준으로 200만 원을 넘겼으니, 장기 보유했다면 수천만 원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숫자는 매혹적이다. ‘그때 샀더라면’이라는 가정은 언제나 달콤하다.


그러나 이런 계산은 어디까지나 사후(事後)의 상상일 뿐이다. 사춘기에 헤어진 첫사랑을 떠올리며 “그때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생과 역사, 그리고 투자는 가정법이 무성한 영역이지만, 실제의 삶은 직설법으로만 흘러간다. 우리는 언제나 그 순간의 정보와 그 순간의 형편으로 선택할 뿐이다.


1997년의 나는 40대 중반, 연구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두 아이의 교육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한 푼이 아쉬웠다. 연구비를 확보하고 논문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았다. 그 60만 원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투자하지 않은 돈이 아니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흘려보낸 돈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젊었지만 불안정했고,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느라 여유가 없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가능성과 불안이 함께 있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의 안정과 관조가 있다. 아이들은 자랐고, 나는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있으며, 세월과 함께 억세졌지만 여전히 곁을 지켜 주는 아내가 있다.


생각해 보면, 그 돈을 애플이나 삼성전자에 투자했더라면 더 큰 자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 내가 택한 것은 주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비비출이었으루것이다. 지금의 안정감과 가족의 자리, 연구자로서의 경력은 그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휴면계좌에서 발견한 60만 원은 ‘놓친 기회’라기보다 ‘살아온 시간의 증표’처럼 느껴진다. 과거를 가정해 보는 일은 현재를 더 선명하게 한다. 만약이라는 계산은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돌아보는 일은 의미가 있다. 그 덕분에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게 된다.


게다가 공돈처럼 발견한 60만 원은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친구와 몇 번의 술자리를 가질 수 있고, 소소한 여행도 계획할 수 있다. 거창한 투자 수익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히 따뜻한 보너스다.


인생은 그래프처럼 직선으로 오르지 않는다. 때로는 통장 한쪽에 작은 금액이 잠들어 있듯, 기회도 기억도 흘러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의 선택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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