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우정의 기억

[이희중 1994년]

by 양창호

1.

1970년대 중반, 대광고등학교 체육관 3층 미술반. 토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그곳에 모인 우리 고1 신입생 7-8명은 석고상 앞에 앉아 데생에 몰두했다. 창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은 평온하고 부드러웠고, 석고상의 명암을 따라가는 연필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다.

그때 나는 이희중과 도흥록을 비롯한 동기들과 함께 미술의 기초를 배웠다. 중학교 때 재수를 해서 또래보다 한 살 많았던 나는 고2 중에 중학 동창까지 있는 특이한 처지였지만, 그림 앞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초보자였다. 신기하게도 석고상의 얼굴이 종이 위에 살아나는 것을 보며 ‘혹시 나에게 재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설렘을 느끼기도 했다.


2.

미술반을 지도하신 홍종명(1919-2004) 선생님은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우리를 당황스럽게 했다. 하루 종일 캔버스에 황토색 물감을 칠하고, 다시 칼로 긁어내고, 또 칠하기를 반복하셨다. ‘왜 그림은 그리지 않고 물감만 축내시나?’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황토색 바탕 위에 진한 갈색으로 발이 삐쭉삐쭉 튀어나온 눈 큰 새가 등장했다. 홍종명 선생님의 트레이드마크인 ‘새’ 연작이었다. 선생님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1세대 추상화가이며, 1960-70년대 앵포르멜 운동의 주요 작가라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 진한 갈색 새 그림 한 점쯤은 받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3.

하지만 평화로운 그림 그리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1970년대 한국 고등학교의 어두운 단면이 미술반에도 존재했다. 선배가 후배를 괴롭히고 구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고2 선배 중 한 명은 이유 없이 키 작은 동기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어느 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정의롭지 못한 폭력 앞에서 침묵할 수는 없었다. “그만두세요! “라고 항의했고, 결국 선배와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다음 날 미술반 고3 회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선배와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나는 미술반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 오후의 햇살도, 황토색 캔버스도, 석고상의 미소도 모두 그렇게 끝이 났다.


4.

2000년경, 이희중 화가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홍익대학교 교수로, 그리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재회했다. 나는 그의 그림 한 점을 구입하고 싶어 연락을 취했고, 그는 흔쾌히 벽제 근처 작업실로 나를 초대했다.

“나 기억나? 그때 고1 때 선배 때문에…”

“물론! 네가 그렇게 그만둔 후로 미술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 선배들의 괴롭힘이 사라졌거든”

이희중은 그때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는 마치 영웅담이라도 되는 양 그 사건을 회상했다. 선배와 싸운 일이 자랑스러울 리 없었지만, 적어도 의미 있는 저항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공유하고 있었다.


5.

작업실에서 이희중은 1994년에 그린 작품 한 점을 내게 건넸다. 조선시대 궁중화가였던 선대(이희중의 5대조는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이었다)의 그림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독특했다. 독일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도 한국 전통회화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기법과 한국 전통의 여백미, 선조들의 회화 모티프가 캔버스 위에서 조화롭게 만났다. 이것이 바로 이희중만의 예술 언어였다.


6.

지금도 그 그림은 우리 집 거실의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토요일 오후의 햇살을, 황토색 캔버스를, 그리고 이희중의 미소를 떠올린다.

이희중 화가는 2014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함께 미술반을 다녔던 도흥록 작가도 이미 세상을 등졌다. 젊은 나이에 떠난 두 동기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하지만 이희중이 남긴 작품들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그의 예술세계는 홍익대학교 회화과 교수로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수많은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해졌다. 그의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운 조형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정체성과 현대성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었다.


7.

체육관 3층 미술반에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예술과 우정, 정의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홍종명 선생님의 황토색 캔버스가 가르쳐준 예술의 인내심, 부당한 폭력에 맞선 젊은 날의 용기, 그리고 25년 후 재회에서 확인한 우정의 가치.

이희중의 작품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예술은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을. 그가 캔버스에 담았던 전통과 현대의 대화는 그가 떠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는 1970년대 어느 토요일 오후, 햇살 아래에서 석고상을 그리던 소년들의 꿈도 함께 녹아 있다.

거실의 그림은 이제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 나눈 시간의 증거이고, 예술에 대한 열정의 기록이며, 너무 일찍 떠난 친구에 대한 추모의 공간이다. 이희중이 그토록 천착했던 ‘전통과 현대의 만남’처럼, 그 그림 속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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