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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ge May 15. 2024

50주년들이 몰려온다.

우리는 20대에 인생의 중요한 시작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첫사랑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셀렘 가득한 직장을 구하고 잘하면 30대 되기 전에 결혼도 했다.


20대에 맞이한 여러 시작들은 부모님과 친척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도 설렘과 잘 모름이 뒤섰여 있었다. 입시를 거쳐 입학한 학교에서 친구들이 나보다 잘생기고 똑똑한 애들이 왜 그리도 많던지 하루하루 주눅 드는 마음을 떨치려고 밤을 새워서 공부한 적도 많았다. 그런 것으로도 호연지기 자존감을 세워나갔던 시기이기도 했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지만, 대학 학과와 사회진로 선택이 올바른 것인지. 더 나은 길이 있는 것은 아닌가 많은 걱정을 했었다. 선배가 추천한 독서동아리에 들어갔다가 사상교육을 받고 흔들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리고 너무나 예쁜 여자 애를 보고는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흔들리는 이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하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20대에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렘과 불안감이 교차하면서도 입학, 친구, 졸업, 입사, 연애, 결혼, 득남 등 거의 중요한 시작을 다 한 것 같다.


이제 칠순이 되니까 20대에 맞이했던 인생의 이러한 여러 가지 시작들이 50주년을 맞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몇 년 있으면 대학졸업 50주년이 될 것이고 또 2-3년 후면 결혼 50주년을 맞을 것이다. 대학동아리였던 사진반 친구들도 50주년 기념 사진전을 하자고 할 테고, 입사동기들도 50주년 기념 회식을 하려 할 것이다.


20대에 시작한 여러 일들을 50년이나 지나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고등학교, 대학, 입사동기 친구들은 그간 어떻게 변했는지? 직장은 그간 잘 다닌 것인지? 결혼은 행복했는지? 자식농사는 잘 지었는지?


최근 만난 고등학교 친구 녀석들, 대학동기 녀석들 50년이 지나도 웃는 모습, 말할 때 몸짓 등이 그대로 인 것이 신기하다. 변하지 않음에 안도하며 더 가까움을 느낀다. 다만 안타깝게도 두어 명이 급하게 이 세상을 떠나갔는데, 그 일을 얘기할 때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만나서 아들 손주얘기도 하고 하던 일들도 서로 얘기하는데,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한 얘기들이 아니다. 서로 건성으로 듣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그 녀석 자신이다. 오래된 친구자체가 즐거움이다.


마침 스승의 날을 맞아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몇 명이 모여 식사를 했다. 역사 선생님이었던 담임선생님은 1974년에 우리를 맡았으니까 올해 2024년이 담임 맡으신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말씀은 항상 천천히 생각하듯 하시고, 글씨도 지금 캘리그라프처럼 아름답게 쓰시던 약간은 자유분방 사고를 가지셨던 선생님이셨다. 애들이 말썽을 피면 마치 친구나 형처럼 말썽 한가운데 들어오셔서 같이 토론하고 얘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우리가 학교를 졸업할 때 함께  학교를 그만두고 대학교수로 이직을 하셨다. 짧게 학교에 계시면서 우리가 고둥학교 마지막 제자가 된 것이다. 80대 중반이신 지금도 거의 같은 속도와 톤으로 말씀하신다. 오늘도 논문을 탈고하고 오시느냐 시간을 이렇게 잡았다고 말씀을 하신다. 이미 대학교수로 정년퇴임한 제자들도 여럿 있는데, 정년 퇴임하신 지 17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논문을 쓰신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禮)에 대한 평소 식견을 말씀하시는데, 예의 내용보다는 선생님의 변함없는 얼굴 모습, 느릿느릿한 말씀에 반가움이 더 느껴졌다.


대학입학했을 때 기뻐하시던 50년 전 부모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경사는 아닌데, 참으로 기뻐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50년이 지나 보니 대학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로 평생 살았지만 그래도 대학입학 때 경험했던 끈기와 인내가 평생을 지배했던 능력이 된 것은 분명했다. 되돌아보며 함께 말씀을 나누고 싶은데, 두 분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셔서 그럴 수가 없다. 부모님과 대학 입학 50주년 기념 식사를 한다면 더 큰 기쁨을 드리는 자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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