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기념
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이 다가오는 해를 바라보며, 지난 시작들을 하나씩 넘겨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던 그 시절은 언제나 설렘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부모님의 축하와 친척들의 격려가 어깨를 토닥여 주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이 길이 맞는가’ 하는 의심이 함께했다. 입학 첫날, 학교 앞의 커다란 간판을 올려다보며 느꼈던 그 떨림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 떨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가는 동력이었다.
20대의 시작은 늘 남다른 설렘으로 시작되지만, 그만큼 잘 모르는 것이 많았다. 나는 입시를 거쳐 들어간 학교에서, 나보다 잘생기고 똑똑한 친구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매일 실감했다. 그들 앞에서 나의 능력과 자신감은 때로 주저앉았고, 그래서 밤을 새워 공부하는 일이 잦았다. 그 절박함 속에서 나는 호연지기, 즉 굳센 기백을 찾아가려 했다. 작은 승리 하나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부모님의 목소리, 친구들의 미소가 버팀목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고, 그래서 더 많이 배우려 애썼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선배가 추천해 준 독서동아리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나는 사상 교육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의 거울을 들이대며 내 안의 흔들림을 드러냈고,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가치관으로 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을 다시 묻게 되었다. 동아리의 토론은 매일의 전날처럼 나를 흔들었고, 나는 자꾸만 내부의 확신과 외부의 목소리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나를 작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더 넓은 사고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시절의 마음은 또 하나의 큰 시작, 바로 사랑이었다. 예쁜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안의 세계가 멈춘 듯했고,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가끔 떠오르면 뺨을 스쳐 지나간다. 마음을 다다르게 다루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지에 대한 판단도 흔들렸고, 마음을 지키려는 순간조차 결국은 타인과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의 설렘과 두려움은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한 축이 되었고,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작은 거름이 되었다.
이 모든 시작들—입학, 친구들, 졸업, 취업, 연애, 그리고 결혼—은 결국 서로를 의심하고 스스로를 다듬는 과정이었다. 20대의 나는 많은 시작을 했고, 그 시작은 종종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물고 다녔다. 하지만 그 불확실성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고, 나를 앞으로도 버티게 하는 힘이 되었다. 득남이라는 생각은 아직은 멀리 있었지만, 앞으로의 삶의 방향은 이미 천천히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50년의 흐름이 다가오는 시점이다. 고등학교 졸업 50주년, 대학졸업 50주년이 다가오는 것을 생각하며, 옛 동아리 사진 반 친구들과의 50주년 기념전, 입사 동료들의 50주년 모임 같은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피어난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는 건 있다. 오랜 친구들의 미소와 말투,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50년이 지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그 사이에 몇몇은 세상을 떠났고, 그 소식은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죽음들조차도 우리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들었다. 살아 있음의 기쁨과 함께, 서로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되묻게 된다.
50년 전 기억 속 선생님도 떠오른다. 담임이었던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1974년에 만난 그분은 늘 천천히 생각을 말하셨고, 글씨는 캘리그라피를 닮아 아름다웠다. 애들이 말썽을 피우면 그분은 친구나 형처럼 다가와 토닥거리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분의 삶의 자세, 특히 예의에 대한 탁월한 식견은 우리에게 행동의 규범보다는 마음의 태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분의 헌신과 서늘한 냉정함, 그리고 느림의 미학은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도 논문을 탈고하고 오는 중이라 하시며 말하는 그분의 목소리는 여전히 느리고도 확고했다. 한 사람의 오랫동안 지켜오는 일관된 얼굴과 말투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부모님의 기쁨 역시 지금의 나를 만든 중요한 조각이었다. 대학 입학의 기쁨은 누군가의 오랜 축복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쁨의 자리를 그리움이 채우고 있다. 부모님은 이제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는 늘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만약 50주년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단지 시작의 기쁨이 아니라, 시작이 남긴 끈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옛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50년이 흘렀음에도 웃음의 모양과 말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과의 대화의 초점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맞춰지는 순간이 오면, 그것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위로가 된다. 삶의 가장 큰 선물은 사람 그 자체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오랜만에 모여 추억하는 순간이야말로 살아 있는 세계의 축복이다.
시작은 언제나 미완이다. 그러나 미완의 시작들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앞으로의 길 역시 아직 시작의 연속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시작 자체의 의도나 끝의 결과가 아니라, 시작으로 인해 생겨난 관계와 가르침들이다. 선생님의 느리되 확고한 말투, 부모님의 기쁨과 현재의 그리움, 그리고 오래된 친구들의 웃음은 내 삶의 방향 표지판으로 남아 있다. 여러 50주년은 과거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도 서로를 지탱하며 함께 걸어갈 길을 다짐하는 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