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는 글과 삶의 구조
1.
몇 번째 교정인지 이제는 세는 것도 민망하다. 출판사에서는 색인 편집까지 모두 마무리하고 최종 승인만 기다리고 있건만, 원고를 다시 펼칠 때마다 고쳐야 할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오탈자는 그나마 양반이다. 인과관계가 뒤틀린 문장, 순서가 어긋난 단락, 설명이 끊어진 자리, 심지어 틀린 수치까지. 이것들은 3교, 4교의 단계에서 발견되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원고를 처음 쓸 때 이미 잡혔어야 할 문제들이다. 오랜 시간 교정을 도와준 편집자 앞에서 고개를 들기가 어렵다.
글을 고치는 일이 이렇게 끝이 없다는 것을 처음 실감한 것은 신문 칼럼을 쓰던 시절이었다. 매달 두세 편씩 칼럼을 써내던 그 시절, 고작 원고지 열 장 남짓한 분량을 두고 일요일부터 수요일 송고 직전까지 스무 번 넘게 고친 적도 있었다. 열 번을 고치고 나서 이제 됐다 싶어 파일을 닫고 이튿날 아침 다시 읽으면, 같은 내용의 문장이 두 군데 들어 있거나 단락의 순서가 뒤바뀐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어이없게도, 문장을 가장 많이 고친 날 다음 날 아침에 가장 큰 오류가 발견되곤 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닌 것 같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5년을 썼고, 단 하나의 문장을 다듬는 데 온 오후를 쏟아붓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올바른 단어와 거의 올바른 단어의 차이는 번개와 반딧불의 차이”라고 말했다. 완성이란 상태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그 집요한 퇴고의 나날이 말해준다. 오케이 직전에야 비로소 글의 구조가 보이고 어색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은 어쩌면 글쓰기의 숙명이다. 그제야 단락 하나를 더하고, 불필요한 문장 하나를 덜어낼 수 있게 된다. 충분히 익지 않은 눈으로는 자기 글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2.
며칠 후면 마지막 학기 강의가 끝난다. 오랜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늦게 대학에 와서 교수직을 시작했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몇 권의 책을 썼다. 수십 년 동안 낱장으로 흩어져 있던 연구 결과와 생각의 파편들을, 한 권의 스프링 노트로 묶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대학에 10년만 일찍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책연구원에서 보낸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마지막 10여 년은 연구자로서 보다 관리자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보고서는 썼지만 질문은 줄었고, 회의는 많았지만 사유는 옅어졌다. 현장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동안, 쓸 수 있었지만 쓰지 못한 논문과 저서들이 머릿속 어딘가에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것만 같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우리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반성함으로써 배운다”라고 했다. 연구원에서 쌓은 경험들이 진정한 지식이 된 것은, 그것을 강의와 저술을 통해 다시 들여다보고 재구성하던 그 후반의 시간에서였다. 그러니 늦었다는 것이 꼭 잃은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일찍 그 반성의 시간을 시작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남는다는 것이다.
3.
글의 교정과 삶의 교정은 닮은 구석이 있다. 둘 다, 충분히 거리를 두고 나서야 비로소 오류가 보인다. 쓰는 도중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며칠이 지나 다시 읽을 때 선명하게 드러나듯, 한창 살아가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낸다. 문제는 그 깨달음이 늘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정에도 마감이 있다. 언제까지나 고칠 수는 없다. 어느 순간에는 펜을 놓고 인쇄를 허락해야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상태가 내가 이 시간에 쓸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시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나온 자리에 아쉬움이 있고 오류가 보인다면, 그것을 붙들고 탄식하는 것보다 지금 남은 원고를 더 정성껏 고치는 편이 낫다.
지나온 삶에 미련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을 더 단단히 살라는 신호다. 채워야 할 빈자리가 보일 때, 망설임 없이 단락을 추가하고 틀린 문장을 고치는 것처럼, 지금 이 자리에서 결심하고 움직이는 것. 그것이 남은 원고를 완성해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결국 글이든 삶이든, 퇴고는 끝나지 않는다. 다만 더 나은 교정을 위해, 오늘도 다시 한번 펜을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