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글자들, 그리고 남은 것들

by 양창호

며칠 전부터 컴퓨터 화면 한편에 경고 문구가 떴다. C드라이브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D드라이브에 여유 공간이 있으니 거기서 작업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옆으로 밀어둔 것이었지만, 그 차이를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며칠에 걸쳐 새 원고를 썼다. D드라이브를 열어두고 한 문장씩 쌓아 올렸다. 구상이 살이 붙고, 문단이 이어지고, 글이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을 느끼며 작업했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파일이 사라졌다. 화면에서 그냥 없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클라우드가 C드라이브와 연동되면서 자동 저장을 시도했고, 저장 공간이 없는 C드라이브는 파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갈 곳을 잃은 글자들은 그렇게 허공으로 흩어졌다.

앞이 하얗게 변했다. 글자들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생각을 더하고 또 더해 쌓은 내용들이었다. 문장 하나하나에 선택이 담겨 있었고, 그 선택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이 한순간에 없어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22년, 파리에서 초기 작품들이 담긴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아내 해들리가 리옹 역에서 기차를 타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이 사라졌다. 단편소설들과 시들, 그리고 그가 공들여 쓰던 소설의 초고까지 모두 담긴 가방이었다. 헤밍웨이는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썼다. 잃어버린 작품들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지금 알 수 없지만, 그 상실 이후에 쓴 작품들이 그를 헤밍웨이로 만들었다. 그는 훗날 그 사건을 회고하며, 잃어버렸기에 더 단단하게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의 손실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상실의 감각은 크기가 아니라 온도로 느끼는 것이다. 며칠치 원고와 문호의 초고는 무게가 다르지만, 갑자기 텅 빈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의 막막함은 같은 종류의 것이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혼잣말을 했다. 다시 쓰면 더 좋은 원고가 될 거라고. 어쩌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러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고. 윈스턴 처칠이 “성공은 실패 속에서도 열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억지로 끌어온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이 그 순간에는 필요했다.

처칠의 말은 허공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모교인 해로 스쿨을 방문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는 전쟁 이전에도 정치적 실패를 반복했고, 수십 년간 권력의 주변부를 맴돌았다. 그가 총리가 된 것은 예순다섯 살이었다. 긴 실패의 시간이 없었다면 그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순간 처칠을 생각하며 숭고해진 것이 아니었다. 참기 어려운 화였지만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글을 잃어버린 것이 분해서 글 쓰는 일까지 내던져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어려운 순간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감정을 속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분하고 억울한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감정이 다음 행동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감정과 방향을 분리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것들은 때로 무언가를 위한 자리를 비워 둔다. 그것이 처음부터 의도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후에 돌아보면, 그 빈자리에 더 나은 무언가가 채워진 경우가 있다. 모든 상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될 가능성을 믿는 것, 그 믿음이 다시 앉아 첫 문장을 쓰게 만든다.

경고 문구를 미루어 두었던 그날, 나는 작은 문제를 방치했다. 그 방치가 며칠치 작업을 날려 버렸다. 그러나 어떤 실수는 그것이 가르쳐 주는 것보다 더 긴 이야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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