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낮은 곳으로, 마음도 낮은 곳으로

사랑도 신앙도 민심도

by 양창호


그릇에 물을 받다 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물이 차오르다 넘칠 때, 그것은 반드시 가장 낮은 쪽으로만 흘러내린다. 그릇 반대편은 물이 한 방울도 넘어가지 않는다. 물은 공평하지 않다. 물은 낮은 곳만 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리고 나는 이 단순한 관찰이 인간의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8장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고 했다. 노자가 물을 가장 이상적인 존재의 비유로 삼은 것은, 물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이 철저하게 낮기 때문이었다. 바위를 깎는 것은 물의 힘이 아니라 물의 끈질긴 낮음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흐른다. 관심과 애정과 신뢰는, 낮아진 자리를 향해 조용히 고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 곁에 사람이 모이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손이 돌아오고, 귀를 여는 사람에게 말이 흘러든다. 이것은 미덕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의 문제다. 마음은 주전자의 물처럼, 반드시 낮은 쪽으로만 흐른다.


역사는 이 원리를 여러 방식으로 증명해 왔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 식민지 통치에 맞서면서도 화려한 언어나 권위에 기대지 않았다. 그는 손수 물레를 돌리고, 소금을 만들기 위해 맨발로 행진했다. 스스로를 가장 낮은 자리에 세움으로써 수백만 인도인의 마음이 그에게로 흘러들었다. 권력이 그를 낮추려 했지만, 그는 스스로 더 낮아짐으로써 결국 더 높은 곳에 섰다.


정치는 이 원리에 가장 민감한 영역이다. 민심은 물이고, 권력은 그 물이 고이는 그릇이다. 그릇이 낮아야 물이 고인다. 높이 들린 그릇에는 물이 담기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재래시장을 찾고, 허름한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는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원리를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은 속임수를 모른다. 진짜로 낮아지지 않으면 흐르지 않는다. 연출된 낮음에 민심은 잠깐 반응하는 듯하다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간다. 주전자를 기울이는 흉내만 내서는 물이 넘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많은 정치적 실패는 사실 능력의 실패가 아니라 낮음의 실패인 경우가 많다. 민심이 떠났다고 탄식하지만, 민심이 흐를 낮은 자리를 먼저 만들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사랑도 다르지 않다. 연인 사이에서, 부부 사이에서,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 마음이 멀어지는 순간을 들여다보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가 높아지려 했던 자리가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 자존심을 지키려는 자리, 먼저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물은 흐르기를 멈춘다.

반면 오랫동안 사랑이 유지되는 관계에는 공통점이 있다. 서로가 번갈아 낮아지는 리듬이 있다는 것이다. 한쪽이 지쳐 있을 때 다른 쪽이 먼저 낮아지고, 그 낮아짐이 다시 상대를 낮아지게 만든다. 주전자를 번갈아 기울이는 것처럼, 마음은 그 흔들림의 방향을 따라 흐른다.


신앙도 같은 이치 위에 서 있다. 세계의 주요 종교 전통이 겸손을 덕목의 핵심에 놓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독교에서는 “스스로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아만(我慢), 즉 자아에 대한 교만을 고통의 근원으로 본다. 이슬람에서는 신 앞의 완전한 복종, 즉 낮아짐 자체를 신앙의 이름으로 삼는다. 은총은 높은 곳을 찾지 않는다. 은총도 물처럼, 낮아진 자리로 흘러든다.


물 받는 그릇을 다시 생각해 본다. 물이 넘치는 방향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낮은 쪽이 정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그릇을 어느 방향으로 기울이느냐이다.

지금 낮은 곳에 있다면 더 낮아지면 된다. 지금 높은 곳에 있다면 더 많이 내려가야 한다. 민심이든 사랑이든 은총이든, 흐르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낮아질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릇을 흔들어 새로운 낮은 쪽을 만들어주면, 물은 아무 말 없이 그리로 흐른다.

물은 설득이 필요 없다. 물은 낮은 곳을 보면 그냥 흐른다. 마음도 그렇다. 진짜로 낮아진 자리 앞에서, 마음은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그냥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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