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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곧 May 28. 2020

손주들과 서귀포 여행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흩뿌리더니 이내 그친다. 한라산 중턱에 하얀 구름띠가 빙 돌아 걸려진다. 마치 한라산이 반지를 낀 것 같은 신기한 모양이다. 초1, 초2, 초3 등 3명의 손주들과 함께 서귀포에 여행 온 것을 특별히 환영해주는 듯했다.

서귀포 근처 남원의 한 짜장면 집주인 아주머니는 계산을 하면서  “아이들이 다 고만 고만하네?”하고 나를 쳐다보며 신기해했다. 쳐다보는 뒤꼬리를 느끼면서 아이들 손을 힘차게 잡고 걸어 나갔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학교에서도 체험학습을 인정해주는 덕분에 평일에 손주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제주의 검은 바위 해변에는 보말이 지천에 널려있다. 관광객 채취를 허용한 이곳 어촌계 덕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바닷물이 빠진 간조시간에 맞춰가면 쉽게 보말을 딸 수 있다. 관광객이 줄어서 그런지 제법 큰 보말 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손주들은 보말 군집도 살펴보고, 움직이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잡아보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보말을 따는 아이들

“할아버지, 여기 모래는 왜 검은색이에요?” 막내 초1 손주 녀석이 쇠소깍 검은 모래 해변을 힘차게 걸으며 물어본다. 열심히 설명했지만 대답은 건성으로 들은 채 바닷가에 있는 만만한 돌을 다 바다에 집어넣으려는지 연신 바다에 돌팔매질을 해댄다.

쇠소깍 검은 모래 해변

핸드폰에 빠져 책을 멀리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디지털만큼 새로운 흥밋거리는 역시 여행이고 자연인가 보다. 아이들이 검은 바위에서 그리고 검은 해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즐겁게 놀았다.

우리 부부는 3명의 손주들을 데리고 당초 계획대로 여러 테마파크들을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멀쩡한데 우리는 힘이 부친다. 며느리와 딸이 힘든 여행 같다고 우리를 걱정한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좀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둘이 서귀포에 여행 왔다면 잘해야 회나 먹고 바닷가나 어슬렁거리다 돌아갔을 것이다. 손주들과 함께 여행을 하다 보니 아이들의 역동성과 호기심 같은 여행 에너지가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전해져, 덩달아 활기찬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그림으로 만들어 놓은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걷는 아이들이 비틀즈 보다 더 다이내믹하게 포즈를 취한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경주용 카트에 아이들을 태워주느냐 6바퀴나 돌았더니 마지막 바퀴를 돌 때는 정말 카 레이서가 된 듯 운전해 댔다. 이 아이들이 아니면 언제 가상현실 공룡을 찾아보고, 소인국 구경을 하고 경주용 차를 타 볼 생각을 했겠는가? 오히려 손주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특히 아이들의 판단은 간단하고 직설적이라 오히려 영감을 준다. 모래 해변에서 바닷물에 첨벙첨벙 뛰놀며, 모래성 쌓기를 한다. 너희들은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답변이 간단하다. 한 녀석은 모래를 만진 손을 씻을 수 있어 좋고, 또 한 녀석은 모래 속에 있는 조개껍질을 찾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막내는 바람이 시원해서 좋다고 한다. 아이들 말은 곧 글이다. 바닷물은 감추고 싶은 모든 것을 말끔히 씻어 내린다. 그리고 바다모래는 모래가 되기까지 무수한 시간 동안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끔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해변을 걷는 사람에게 인사하고 지나가는 여행객과 같이 상쾌하다.

할아버지와 함께한 며칠간의 여행은 손주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며, 함께 보낸 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새로운 활기를 얻은 여행이고 기쁨이 가득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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