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도래와 현실
유엔이 제시한 인구 모델 개념상 초고령화(super age) 사회는 다섯 사람 가운데 한 명의 나이가 65세 이상인 경우다.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일 때 슈퍼 에이지라는 얘기다. 한국은 2025년, 일본은 이미 2006년에 이 기준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9.2%로, 2025년에는 20.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거나 문턱을 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초고령 나이가 65세 이상이라고 하는데, 실제 우리 주변에서 65세 이상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역동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기업 오너 회장이나 대표인 경우 엄청난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70이 넘으신 분들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78세까지 그룹을 이끌었고,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명예회장은 86세인 지금도 여전히 경영 전반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워런 버핏은 94세의 나이에도 연례 주주서한을 통해 투자 철학을 전파하고 있다. 찰리 멍거는 99세까지 버핏의 파트너로 활동했다. 이들의 판단력과 통찰력은 젊은 경영자들이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경우도 만 65세가 넘게 되지만 여전히 명예교수로 학교와 사회를 위한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의 많은 석학 교수들도 정년 이후에도 연구실을 유지하며 젊은 교수들과 협업하고 있다.
미들플러스 세대의 경제적 가치
50~74세 사이의 연령대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일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슈퍼 에이지 이펙트』의 저자인 미국 미래학자 브래들리 셔먼은 이들을 미들플러스 세대라 하며 왕성한 경제활동을 이어가면서 소비와 자산 운용 등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50세 이상 인구가 전체 소비의 56%를 차지하며, 금융자산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60대의 평균 순자산은 5억 원을 넘으며, 이들의 소비 지출은 전체 가계 소비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부동산, 주식, 예금 등 자산 운용에서도 이 세대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에서 약 50년 전인 1967년부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 ADEA)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 법은 40세 이상의 근로자를 채용, 승진, 해고 등에서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다. 유럽연합도 2000년 고용평등지침을 통해 연령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도 2008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적용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골든 에이지로서의 70대
100세의 철학자로 불리는 김형석 교수님은 102세가 넘어서도 여러 군데 강연을 다니신다. 김 교수님은 70대를 계란의 노른자 같은 golden age라고 부른다. 세계적인 대문호들이 역작을 남긴 나이가 70대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괴테는 『파우스트』 2부를 82세에 완성했고, 톨스토이는 71세에 『부활』을 썼다. 빅토르 위고는 74세에 『93년』을 발표했다. 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조각과 건축 작업을 계속했으며, 파블로 피카소는 91세까지 그림을 그렸다. 이들의 만년 작품은 젊은 시절의 작품과는 다른 깊이와 성숙함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박경리는 80세에 『토지』 전 16권을 완결했고, 피천득은 90세가 넘어서도 수필을 발표했다. 백남준은 70대에 가장 실험적인 비디오 아트를 선보였다. 이들의 창작력은 나이가 들수록 더 원숙해졌다.
노년에 대한 두 가지 시각
노인과 죽음에 대한 에세이를 쓴 미국의 윌 듀런트는 『노년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노인은 감각과 의지가 무뎌진 덕분에 편안함을 느낀다”라고 했다. 그래서 노인은 본론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열렬한 청년의 눈빛과 치열한 시간과 논리의 싸움에서 허구한 날 똑같이 어리석은 이야기만 늘어놓기 때문에 무대를 비워주어야 할 노인으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듀런트의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노인관을 반영한다. 노화는 곧 쇠퇴이며, 노인은 과거에 갇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많은 조직에서 나이 든 관리자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과거의 성공 방식을 고집하며,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회의 시간에 본론과 상관없는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아 젊은 직원들을 지치게 만드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같은 염세주의적 노인관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젊은이들이 똑같은 실수를 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달리 노인은 농익은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때 방역 당국자들은 초기 대응에 혼란을 겪었지만, 과거 사스와 메르스를 경험했던 나이 든 전문가들은 신속한 봉쇄와 추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년의 예리함을 유지하는 법
다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은 청년과 같은 열렬한 눈빛을 유지하고 치열한 논리싸움에서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순발력을 유지해야 한다. 김형석 교수님은 이 방법으로 정기적으로 근간 책을 읽고 친구들과 토론을 가지라고 한다.
김 교수님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고 한다. 철학, 역사, 문학은 물론이고 최신 과학 서적까지 섭렵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은 연배의 학자 친구들과 모여 토론한다. 이런 습관을 80년 넘게 유지해 온 결과, 102세의 나이에도 명료한 사고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도 87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판결문을 썼다. 그녀는 매일 새벽 운동을 했고, 최신 법률 논문을 읽었으며, 젊은 로클럭(법률 보좌관)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이가 들수록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70세 넘어서도 월급을 받는다는 것
은사님이신 고 송자 연대총장님께서 교육부총리를 그만두시고 70세가 되셨을 때 한 민간그룹의 회장직을 맡아 일을 하실 때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러분들 70이 넘어서도 월급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 1%도 안 될 거야! 여러분도 70 넘어서도 월급 받아야 할 것 아냐?”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70세 이상 고용률은 33.6%지만, 이 중 정규직으로 월급을 받는 비율은 10%가 채 안 된다. 대부분은 자영업이나 일용직,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전문직으로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하는 경우는 송자 총장님 말씀대로 1%에 불과하다.
70세가 넘어서도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자신의 전문성이 여전히 사회에서 필요하다는 증거이며, 자존감의 원천이다. 한 대형병원의 원로 외과의사는 75세인데도 여전히 어려운 수술을 집도한다. 그의 손끝 감각과 판단력은 수천 번의 수술 경험에서 나온다.
위기 대처 능력과 노련함의 가치
어떤 종류의 인재이든 관련 분야의 문제가 터졌을 때 이를 수습하고, 반전시킬 능력이 있는 인재가 가장 소중한 것이다. 젊음의 패기로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임원급의 노련한 경험으로 해결해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종종 간과할 수 있는 능력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한 이후의 인재에서 발견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를 보자. 젊은 엔지니어들은 매뉴얼대로 대응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이때 나선 것이 ‘후쿠시마 50’이라 불린 평균 60세 이상의 베테랑 엔지니어들이었다. 이들은 과거 원전 건설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매뉴얼에 없는 창의적 해법을 제시했고, 최악의 사태를 막아냈다.
이들은 한 분야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과 지혜로 무장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대안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CEO들은 종종 이러한 지혜를 얻기 위해 이런 사람들을 고문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문제가 터지면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삼성전자는 ‘마이스터 제도’를 운영한다. 정년퇴직한 기술 전문가들을 다시 고문으로 채용해 기술 자문을 받는 제도다. 현대차그룹도 ‘수석 엔지니어’ 제도를 통해 베테랑 엔지니어들의 경험을 활용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많은 스타트업들도 ‘어드바이저리 보드’에 나이 든 전문가들을 영입한다. 기술은 젊은이들이, 경영 전략과 위기관리는 노련한 전문가들이 맡는 것이다.
노련함을 발휘하기 위한 세 가지 능력
그럼 무엇이 이와 같은 새로운 시각의 대응논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필자의 경우 업계의 전문성은 물론, 법적, 학문적, 실무적으로 종합적인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능력을 지녀야 한다.
첫째, 문제의 중대성을 신속히 인식하는 능력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임을 신속히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험이 적은 관리자들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파급력과 중대성을 단번에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안이함으로 신속히 대처 못한 후회를 많이 해본 유경험자일수록 문제의 중대성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2016년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건 때, 초기에는 일부 불량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과거 리콜 사례를 경험한 베테랑 품질관리 전문가들은 즉각 전량 회수를 주장했다. 결국 그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직관은 오랜 경험에서 나온다. 젊은이는 처음 겪는 문제지만, 노련한 전문가는 “이런 일은 20년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안다.
둘째, 최신 전문지식의 지속적 업데이트
문제에 대한 관련 전문지식(Domain Knowledge)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결에 대한 소신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이보다 더 부지런하게 관심분야에 대한 최신의 국내외 분석기사나 사설, 단행본들을 읽고 메모해 두어야 한다.
또한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중요한 이슈가 생기면 전화 몇 통이면 각 분야 최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셋째, 후속 영향 예측과 선제적 대응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관련 의견을 청취, 정리한 후에는 이를 바탕으로 어떤 후속 영향이 있을지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든 사람의 장점은 사안이 발생했을 때 어떠한 후속 영향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를 보자. 젊은 애널리스트들은 유가상승만 걱정했다. 하지만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경험한 베테랑들은 즉각 “곡물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밀수출의 주요 공급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달 후 식량 위기가 현실화되었다.
이제 막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채기 시작한 젊은이들과 달리 노련한 베테랑들은 이미 어떤 일이 발생할지까지 예상하고, 나아가 그 예상되는 결과를 완화시키기 위한 단기 및 장기조치까지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가 부각되기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기업은 홍보용 보고서 만드는 수준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과거 환경 규제 강화 과정을 지켜본 베테랑들은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몇 년 후 ESG는 투자 결정의 핵심 기준이 되었고, 미리 준비하지 않은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노련함의 미래 가치
종합적 사고와 대처가 중요시되는 미래 우리 사회나 기업은 나이보다는 누가 더 노련한가를 볼 것이다. 윌 듀런트가 표현한 ‘나이 들어 겁먹은 보수주의자’로만 보여서는 곤란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3’에 따르면, AI와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복잡한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 ‘창의성’, ‘사람 관리’, ‘판단력과 의사결정’이다. 이 모든 능력은 경험이 축적될수록 향상된다. 즉, 나이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스타트업 창업자의 평균 성공 나이는 45세이며, 가장 성공적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평균 나이는 50세가 넘는다. 20대의 패기만으로는 부족하고, 경험과 네트워크, 판단력이 결합될 때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성실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치열한 지식습득, 여기에 풍부한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잘 보이지 않는 최적대안을 찾아내는 노련함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슈퍼 에이지 시대, 나이는 더 이상 은퇴의 신호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단, 그것은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젊은이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겸손하게 배우고, 더 예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나이는 약점이 아니라,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