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마음은 사소한 것에서도 복잡하게 얽힌 감정이 생긴다. 최근 공항에서 걷다가 내 걸음걸이가 다른 이들보다 늦어지자 지지 않으려고 더 빨리 걸었다. 내가 벌써 노화되고 있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찾아온 것이다. 노화가 가져다주는 육체적 약해짐은 매우 큰 두려움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다. 50대 이후 근육량은 매년 1~2%씩 감소하고, 심폐기능은 10년마다 10%씩 떨어진다고 한다. 시력과 청력도 점진적으로 약화된다. 뇌의 인지기능도 60대부터 서서히 저하된다. 이것은 질병이 아니라 노화의 정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거울을 볼 때마다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가 낯설다. ‘이게 정말 나인가?’
집사람은 마실 가고, 늦은 저녁 홀로 앉아 있으니 서늘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든다. 지난 삶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사랑했던 사람들, 이루고자 했던 꿈, 그리고 여러 고난과 역경 속에서 얻었던 것들이 마음의 무게로 내려앉았다. 오랜 기간 동안 몰두했던 과거의 경험과 배움이 단순한 기억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더욱 무겁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나의 존재가 이 세상의 작은 파문처럼 사라져 버릴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라고 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추상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진실로 다가온다.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50세에 쓴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무너질까 두렵다.” 소세키는 그 두려움을 소설로 승화시켰다. 『마음』, 『그 후』 같은 걸작들은 모두 죽음과 무상함을 다룬다.
글을 써야겠다. 이러한 불안이 커지는 만큼 내가 이 세상에 남긴 흔적이라도 글로 남겨야겠다. 내가 겪은 모든 고통과 기쁨, 늦은 밤에 흘린 눈물, 따스히 웃던 순간들을 남기고 싶다.
미국의 자서전 작가 윌리엄 진서는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생각하기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된다.” 글쓰기가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닫혀 있는 마음의 창을 조금씩 열며, 내 안의 불안과 마주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도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내 경험, 내 실수, 내 깨달음을 글로 남길 때 그동안 쌓아온 지혜와 경험을 나누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선택했던 결정들, 그로 인해 변화한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나의 경험을 남길 수 있다. 누군가 그것을 읽고 위로받거나, 교훈을 얻거나, 용기를 얻는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