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떠난 사람의 불안에 대하여

by 양창호

감사패를 받았다. 26개 국책연구원장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패였다. 저녁 자리에서 동료들이 물었다. 원장을 그만두고 나서 요즘 무엇을 하며 지내냐고. 그 눈빛 속에는 순수한 안부도 있었지만, 저렇게 열심히 살던 사람이 이제 어떻게 지낼까 하는 궁금증도 섞여 있었다.

나는 뻔한 대답을 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독서를 하고, 음악을 듣는다고. 그 대답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직하지는 않았다. 정직한 대답은 따로 있었다. “불안합니다.”


퇴임한 지 두 달이 지난 아침, 나는 서재에서 책 몇 권을 빼들고 속독을 한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두어 시간 그렇게 보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처음에는 그것이 독서에 대한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솔직히 들여다보면, 지금 이 시간에 남들은 출근해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보상 행위에 가깝다.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을 책 한 권으로 잠시 덮어두는 것이다.

옆에 있던 분이 그것을 워커홀릭 증상이라고 했다. 일중독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오히려 내 상태가 워커홀릭보다 더 복잡한 것임을 느꼈다. 워커홀릭은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경제와 사회의 이슈를 가장 먼저 읽고 가장 앞에서 발언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내려온 뒤에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강렬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떠난 뒤에 겪는 어떤 공통된 감각이 있다.

드골 대통령은 프랑스를 두 번 구했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배하자 그는 즉시 사임하고 콜롱베의 작은 마을로 물러났다. 측근들이 만류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듬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전기를 쓴 장 라쿠튀르는 드골이 권력을 떠난 뒤 급격히 쇠약해진 것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존재의 이유’를 잃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대를 자발적으로 떠난 사람조차, 무대가 사라진 자리의 공백은 피할 수 없었다.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돌연 소설 쓰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쌓아온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훗날 그 결정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글을 쓰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고. 역할을 내려놓는 것은 곧 자신의 일부를 내려놓는 일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역할 정체성의 상실’이라 부른다고 한다. 오랫동안 특정한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해온 사람이 그 역할을 잃을 때, 마치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 것 같은 공백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은퇴한 운동선수, 퇴임한 고위직, 자녀를 독립시킨 부모. 이들이 겪는 공통된 감각은 나태함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에너지다. 가야 할 곳은 알 수 없지만, 멈춰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

그러니 아침마다 서재에서 책을 빼드는 것은 게으름의 반대편에 있다. 그것은 여전히 무언가를 향해 달리고 싶은 사람이, 달릴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제자리를 뛰는 모습이다. 그 불안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제대로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다스려야 할 것도 있다. 뒤로 물러나면 빛을 잃고 선택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것은 정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무대 위에 있을 때의 나와 무대 아래에 있을 때의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다만 역할이 달라진 것이다. 역할이 달라졌다고 해서 존재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꺼이 무대를 비워주는 것, 자신이 한 일로 주변 사람들이 더 드러나고 커지는 것을 기뻐하는 것. 그 마음이 이미 거기 있다면, 불안은 천천히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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