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숨은 맛, 가자미조림

아바이회국수

by 글곧

속초에 가면 먹을 것이 넘쳐난다. 오징어순대, 아바이순대, 닭강정, 새벽 시장의 홍게까지 — 어느 골목을 돌아도 음식이 손짓한다. 그러나 이름난 맛집 앞에는 늘 줄이 길고, 그 줄 끝에서 마주하는 음식은 종종 기대에 못 미친다. 기다림에 지쳐 입맛이 둔해진 탓인지, 아니면 밀려드는 관광객을 감당하느라 음식이 스스로 지쳐버린 탓인지.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다. 음식이 그저 소비된다.

그런 속초에서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집이 있다. 간판도 소박하고, SNS 피드를 장식할 만한 인테리어도 없다. 그러나 이 집의 가자미조림과 명태조림 앞에 앉으면, 속초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먹었다는 확신이 온다.


생선 요리를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회나 구이를 먼저 생각한다. 신선함의 극단은 회고, 껍질이 바삭하게 구워지는 그 소박한 쾌감은 구이가 준다. 탕은 추운 날 속을 달래주는 위로의 음식이다. 그러나 조림은 다르다. 조림은 기다림의 음식이다. 불과 간장과 시간이 한 냄비 안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맛을 빚어내는 것이 조림이다. 그래서 조림은 서두르지 않는 주방에서만 나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조림이야말로 생선 요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

강원도에서 가자미는 그냥 생선이 아니다. 특히 원산 가자미는 동해 찬물에서 단단하게 자라 살이 치밀하고 단맛이 깊다. 그 가자미를 제대로 조리면 살이 쉽게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젓가락 끝에 살짝 힘을 주면 결대로 발라진다. 속초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가자미를 특별하게 여긴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집의 가자미조림이 남다른 것은 국물에서 시작된다. 보통 생선 조림은 국물이 적고 바짝 졸아 있다. 간이 세고, 생선의 비린 냄새를 강한 양념으로 눌러 이긴다. 그런데 이 집은 다르다. 국물이 넉넉하다. 그러면서도 짜지 않다. 첫 숟가락에 혀가 먼저 놀라는 것은 그 국물 맛이다. 어딘가 낯이 익다 싶다가 문득 생각난다. 잘 끓인 불고기 국물 같은, 그 감칠맛이다. 달지 않으면서 단 것 같고, 진하지 않으면서 깊은 맛이다.

그리고 냄비 바닥을 보면 무가 있다. 생선 조림에서 무는 흔히 조연이다. 그러나 이 집에서 무는 다른 역할을 한다. 조림 내내 생선에서 흘러내린 진액과 간장과 갖은양념을 모두 머금고 천천히 익어, 무 한 점 안에 이 냄비의 모든 시간이 담긴다. 생선보다 먼저 그 무를 먹어보면 이 음식이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무 한 조각이 이 집의 철학을 설명한다.

명태조림도 마찬가지다. 명태는 건조 방식과 조리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되는 재료다. 코다리처럼 반건조된 명태를 조리면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면서 양념이 속살까지 배어든다. 이 집의 명태조림은 살이 흐물거리거나 부서지지 않고 단단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젓가락 한 번에 속살이 드러난다. 그 속살이 국물을 머금고 있어 입 안에서 촉촉하다.


식사를 마무리하며 아바이 회국수를 한 그릇 받아 든다. 속초 아바이마을에서 유래한 이 음식은 실향민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냉면과는 다르고 비빔국수와도 다른, 차갑고 탱탱한 면 위에 회와 채소가 얹히고 새콤달콤한 양념이 감기는 이 국수는 조림의 묵직한 여운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한 끼의 식사가 시작과 끝을 갖춘 이야기처럼 마무리된다.


속초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음식을 먹는 일은 다르다. 그것은 종종 간판도 없는 골목 안쪽에 있고, 메뉴판보다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에 있고, 무 한 조각이 입 안에서 뭉개지는 그 찰나에 있다.

이 집의 가자미조림은 속초에서 내가 만난 생선 조림의 기준이 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기준이 생기면 다른 음식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좋은 음식 한 그릇이 그렇게 사람의 미각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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