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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Jul 14. 2024

버튼.

버튼.


“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그가 들어간 방은 천장과 벽, 바닥이 온통 하얗고, 허리 높이의 검은 사각 테이블이 가운데 놓여 있다.

테이블 위에는 동전 크기의 노란색 버튼과 그 아래 흰색 카드에 문구가 적혀 있다.


“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검붉은 안경테를 고쳐 쓰며 남자는 골똘히 문구와 버튼을 번갈아 바라본다.

갯벌이 밀물로 잠기듯 그의 생각이 질문들로 찬다.


우선 그는 자기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이곳이 그가 지닌 기억의 지평선이다.

이내 그는 자신이 흰 셔츠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살핀다.

옷에는 티끌 하나 없다.


다시 그는 시선을 버튼으로 옮긴다.

도대체 어떤 버튼인 건지, 누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버튼이 성스럽게 올려져 있는 책상을 중심으로 천천히 걷는다.


순백이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버튼은 정교히 만들어져 내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도 버튼처럼 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하루인지 한 시간인지 몇 분인지 모를 시간이 흐르며 그는 명료해진다.

그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다.


가만히 있거나.

버튼을 누르거나.


길지 않은 흰 방에서의 과거를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누르지 말라는 경고문을 따라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경고문을 무시하고 버튼을 누르면 분명하진 않지만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차이는 누르는 순간 명확해질 것이다.


만약 변화가 일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양반다리를 하고 생각에 잠기다 그는 문득 적막 중 자신의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자신에 관한 사실을 한 가지 더 기억한다.

나는 심장이 뛰는 존재이기에 유한한 삶을 지닌 존재구나.


그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지그시 깨문다.

붉은 핏방울이 흰 바지에 떨어져 그라데이션을 그리며 퍼진다.

가만히 지켜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테이블 앞에 서서 핏방울이 묻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른다.

“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경고 문구에도 붉은 자국이 남는다.


그를 감싸고 있던 하얀색 알이 버튼의 작용으로 깨진다.

방은 껍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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