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작가 @Yontada)
구름 사이로 내민 보름달마저 시린
어스름한 저녁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학교로 다시 돌아간다는 기분 때문인지
아니면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버스 안 풍경은 저승 가는 열차처럼 거뭇하다.
덜컹대는 자리에 앉아
거침없이 스쳐가는 가로등 빛을 보고 있자니
슬며시 기억 속 장면이 떠오른다.
수직의 태양빛이 뜨거웠던 그 날
강하면서 천박한 버스의 에어컨이 고마울 정도로
더웠던 날이다.
버스에 올라타 가만 지켜보니
평소와 달리 운전기사 옆 좁은 공간에
꼬마 아이가 운전기사의 팔을 붙잡고 서 있다.
검게 탄 얼굴과 편한 반바지, 반팔 티셔츠.
그리고 형광 색색의 샌들.
전형적인 초등학생 여름 패션을 소화한 아이는
아마도 운전기사의 어린 아들인 듯
기사가 운전을 하는 내내
자리에서 기사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다만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시점이 되면
아빠 지금?이라고 묻고
기사가 엄중히 고개를 끄덕이면
버스 문을 여닫는 손잡이를 올리고 내렸다.
치익~하는 유압펌프 소리와 함께
버스만큼 커다란 앞문과 뒷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타고 내렸다.
그리곤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버스는 문을 닫고 정해진 길을 달렸다.
갑자기 고질적인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분명 기사의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인 그분은
아이를 돌보기에는 너무 바쁘실 것이다.
기다렸던 여름방학이 시작해
여기저기로 놀러 나가는 친구들의 자랑은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에게 들려왔겠지.
계절과는 상관없이 승객들의 발 역할을 해야 하기에
멀리 놀러 갈 수 없는 아버지의 미안함은
아이에게 소박한 슬픔을 주었을 것이고.
아이의 슬픔을 한 조각 덜어주고자
아버지는 회사 간부에게 사정사정해서
하루만 아이와 함께 운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비밀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도,
하다 못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옆집 형도
이렇게 큰 버스를 몰진 못하지.
아빠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면서
여기저기 다닌다는 자랑스러운 사실과
빵빵하게 나오는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은
어느 바다의 태양빛과 모래도 줄 수 없는
행복한 피서의 기분일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손잡이!
그 손잡이를 조작한다는 기쁨!!!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시내, 시외, 고속, 해외 수천번의 버스를 타봤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그 손잡이!
나에겐 오직 해보고 싶은 꿈으로만 남은
'버스 문 여닫는 손잡이를 조작한다'는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그것을
아이는 지금 이 순간 맘껏 즐기고 있었다.
솔직하게
나는 그 순간만큼은 아이가 부러웠다.
나도 그 문을 열어보고 싶다고!! 소박하게 웃는 그 아이를 보고 있자니
잠깐 늦게 닫은 버스 문 틈으로
행복이라는 승객이 버스 안에 무임승차한 느낌이었다.
이런저런 기억을 떠 올리고 나니
어느새 버스는 학교 앞에 달했고
보름달 내리는 정류장에 내리고 보니
그 버스는
그냥 그 여름의 버스였다.
#그아이는지금쯤대학에갔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