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봄밤
겨울과 봄의 문턱 즈음
선배와 선배의 지인과 삼천포 허름한 실비집에서
방향 없는 술자리를 가졌었다.
선배의 지인은 주점 관리인을 포함하여 여러 직업을 지녔던
덥수룩한 수염이 희끗한 건설업자다.
정처 없이 부유하던 술자리 얘기 중
갑자기 국민의 의무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국민의 의무는 국방, 납세, 교육, 근로 네 가지로
바뀐 적이 없고 그대로라고 나는 주장했고
수염이 덥수룩한 선배의 지인은
국민의 의무가 늘어나 네 가지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 정도 큰 변화라면 내가 들어본 적 없을 리가 없다고 확신했고,
술기운이 그 확신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내심 알게 모르게 지인님의 덥수룩한 수염과
상남자식 거침없는 발언으로 미루어
그분의 지식을 얕잡아 봤을 수도 있다.
서로 내기로 무엇을 걸까,
술값을 내자, 다음 차를 쏴라 라고 소리치다
화제는 자연히 엉뚱한 곳으로 날라갔다.
흐릿하고 빠르게 밤 시간은 흘렀다.
다음 날 아침 선배네 고성 시골 별장에서
숙취에 절어 뒤척이다가
문득 어젯밤 내기가 떠올랐다.
누운 채 초록창에 ‘국민의 의무’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 결과
우리나라 국민은
국가를 지킬 의무
세금을 낼 의무
교육을 받을 의무
근로를 할 의무에다가
환경을 보전할 의무와
공공복리에 적합한 재산권을 행사할 의무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찔했다.
아마도 나는 한 가지 의무를 더해야 할 듯싶다.
남의 행색을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신뢰하지 말아야 할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