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반대론자의 기억
닿을 수 없는 위안.
(그림 작가 @Yontada)
근무 오프의 한가한 오후에
노을이 멋진 카페 코끼리에 온 김에
특별한 경험을 고백하자면
코끼리와의 일대일 대면식을 얘기할 수 있겠다.
12년 전 겨울방학 친한 동기들 J, S와
중국 베이징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바다 너머 첫 여행의 설렘과
이국의 생경한 풍경이 주는 즐거운 나날 중
의견이 갈리는 하루가 찾아왔다.
J와 S는 중국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곳을 보고 싶어 했고,
소위 문화 청년을 자처하던 나는
베이징 미술관과 동물원(?)을 보자 주장했다.
의견은 아침 먹은 후까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양갈래로 걸음이 흩어졌다.
지하철을 이용해 홀로 도착한 중국 베이징 미술관.
자칭 문화 청년의 갬성으로 작품들을 감상 중
무거운 이야기를 농축한 회색 인물화가 눈에 띄었다.
그림 속 그들은 이상하리만큼 크고 검은 눈으로
자신들의 기억을 읊고 있었다.
이름표에 쓰인 작가의 이름은 '장샤오강' 이었다.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이자
고액의 작품 가격으로 그의 이름을 다시 본 건
몇 년 후의 일이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준비한 경로를 통해 동물원으로 출발했지만,
내가 보는 지도와 실제 모습은 같지 않았다.
나는 약 두 시간 정도를 베이징 길거리에서
회화책 속 '동물원이 어디입니까'라는 문장을 가리키며 헤맸다.
결국 지도의 기호를 잘못 해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늦게나마 도착한 동물원.
이미 시곗바늘은 해가 뉘엿한 오후 다섯 시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원을 떠난 시간.
동물원은 이름 그대로 동물들과 어스름만 있는 곳이 되었다.
긴 하루 희극 역할에 지친 동물들은
모노톤의 시멘트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스산한 울음소리와 어둠이 짙은 길을 걷다가
연 노란 벽을 두른 건물을 만나 생각 없이 들어가 보았다.
쉬익 쉬익-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친 것은
공간에 가득 찬 따듯한 들숨과 날숨이었다.
어둠 속 코끼리 한 마리가 큰 눈동자를 깜박이며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건물
진회색 거대한 코끼리와 상대적으로 작은 나.
그렁한 큰 눈동자와 작은 두 눈동자로 마주 보고.
조용히 날숨을 섞었다.
귀찮은 걸까, 궁금한 걸까.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건가.
알 길이 없는 침묵의 시간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내가 그를 시야 가득히 바라본 것처럼.
잠 시라기엔 꽤 긴 한동안
그도 나를 바라봤다는 것이다.
미술관 작품 속 큰 눈을 지닌 회색빛 중국인들이 그들만의 회한을 품고 있듯,
회색 가죽 안에서 큰 눈을 껌벅이던 코끼리는
타국만리 시멘트 빛 동물원에서 자신만의 기억을
들숨과 날숨 사이로 끊임없이 되새김질했을 테다.
그때 그를 바라보던 작은 인간이 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
12년이 지나 글을 남긴다는 사실이
그의 회한에 닿지 못하는 위안이 되길.
그가 있던 서쪽으로 지는 노을에 담아본다.
#동물원반대론자의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