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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케이블카에는 식당이 있다.

부산 레이오버에서 만난 사람들

by 김대호

서울 김포공항(GMP) - 부산(PUS) - 제주(CJU) - 부산(PUS) - 베이징(PEK) - 부산(PUS) - 김포공항(GMP)


항공업계에서 타 국가나 지역의 공항에서 운항을 마치거나 시작하기 위해 숙소에 묵는 것을 흔히 레이오버라고 한다.


3일 전부터 김해공항 중심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부산에서 레이오버 중이다.

야간 비행이 있는 날의 오전, 호텔 주변 뛰기 좋은 곳을 찾아 무작정 달렸다.

달리다 금정산의 로프웨이, 다시 말해 케이블카 탑승장을 발견했고 왕복 탑승권을 끊었다.

케이블카는 산의 정상으로 손쉽게 이동하면서 동시에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평일 오전이라서일까, 케이블카 내부에는 나 말고는 노부부 두 분만 앉아 계셨다.

대기하는 동안 새로운 탑승객은 없었고, 세 명이 앉은 케이블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점차 드러나는 부산의 풍광에 ‘대단하다’ 란 의미를 담아 탄성을 질렀다.

그러자 깔끔한 차림의 노부부께서 말문을 여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분은 30년 전부터 케이블카 정상 탑승장 2층에서 식당 겸 매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지금 이 케이블카 탑승이 일하러 가는 출근길인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탑승 요금도 안 내신다고 한다.


우선 처음 보이는 병풍 같은 온천장 주변의 높다란 신식 아파트가 본인들 보기에는 참 답답하다고 하소연하셨다.

어제 만난 픽업 운전기사님이 좋은 학군으로 가격이 비싸다고 설명하셨던 아파트들이었다.

똑같은 아파트도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 또 누군가에겐 답답함의 원인이 된다.


금정산을 따라 케이블카가 오르며 부산 시내부터 멀리 바다까지 경치가 멀고 넓어졌다.

두 분은 손수 사직구장, 월드컵 경기장, 광안대교, 엘시티 빌딩 등 굵직한 명소들의 위치를 찍어주셨다.

전에는 운영하시는 식당 마루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광안리 불꽃놀이 보기 참 좋았다고 하신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 잘 보이지 않으며, 나무는 산림청이 못 건드리게 한다고.


쨍한 여름날 케이블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해, 참 시원하고 좋은 곳에서 일하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님이 부산시내보다 산 위에는 5도 이상 시원하다고 맞장구 쳐주셨다.

해발 1000피트(305미터 정도) 당 온도가 섭씨 2도씩 낮아지는 게 항공 기본 상식이다.

금정산의 상계봉이 해발 640미터이니 5도가 낮다는 말은 상식과 꽤 부합했다.


케이블카는 어느새 정상에 다달았다.

주변 둘러보고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노부부는 2층으로 올라가셨다.

나는 산길을 따라 걷다 전망대를 만나 파란 바다와 하늘로 둘린 부산을 감상했다.

부산이라는 이름대로 여기저기 솟은 산들 사이로 사람과 건물과 삶이 빼곡했다.


다시 목적 없이 걷다 발견한 휴정암이라는 작은 사찰.

고개를 숙이고 낮은 자세로 들어가야 하는 입구 옆 안내표지판을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 틀린 말이 없다.

틀린 말이 없는 문장대로 사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한 틀림없다.


내려가는 케이블카를 타기 전 탑승장 2층의 식당에 들렀다.

두 분이 바쁘게 만들고 계신 음식 냄새가 편안하게 퍼지고 있었다.

사이다를 구입한 후 함께 사진을 찍자는 어려운 부탁에 어리게 부끄러워하셨다.


부산의 경치 속으로 내려온 케이블카에서 내려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만큼 부기가 빠진 마음도 가볍게 느껴졌다.

시원한 사이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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