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화나게 하는 풍경.
합법적인 중독에 물드는 내 모습을 관찰하는 것은 꽤 화가 나는 일이다.
합법적인 중독은 ‘합법’이기에 오직 내 노력으로 절제의 선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중독이기에 어디에도 쉽게 꺼내 얘기하기 힘들다.
예를 들면 짧은 틈이라도 주어지면 내 손가락이 멋대로 켜는 쇼츠와 릴스가 그렇다.
나는 1분 동안 쇼츠와 릴스를 통해
- 자극적인 영화 중에서도 민간 항공기가 노부부를 덮치는 15초 씬
- 영리하고 귀여운 꼬마 아기의 소파에 얼굴을 묻는 엉뚱하지만 신기한 재롱
-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비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한 기능을 갖춘 골프 연습 제품
- 멋지고 잘생긴 연예인들이 시상식장에서 축하곡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
- 잊고 있었던 ‘육아’ 애니메이션의 이제는 남얘기가 아닌 명장면
- 연인사이 일상생활의 공감대를 예리한 시선으로 들춰내 유머러스하게 만든 영상
- 짧지만 듣기만 해도 평화로워지는 선율을 연주하는 연주자들
- 가기 힘든 세상의 멋진고 신기한 곳들을 보여주는 여행자들의 셀카
를 손가락을 튕기며 감상한다.
(글을 쓰는 중에 영상들을 넘기며 기록해 보았다.)
불과 10년 전 만해도 몇 주일, 며칠 동안 맛볼 수 있던 ’ 재미‘를 1분이면 감상할 수 있다.
그러니 자동으로 내 손가락이 영상 재생 어플을 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영상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시계를 본다.
달리의 그림에 나오는 시계들처럼 시간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흘러내린다.
머릿속 뇌도 도파민에 축축해진다.
나아가 지하철 같은 공공영역에서 본 장면은 나를 더 화나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폰을 들고 각자가 원하는 영상들을 보는 풍경.
자본 시스템이 만든 무의미라는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한 장면에 소시민의 무기력함이 느껴진다.
내가 그 장면의 일 부분이라는 사실은 더욱 나를 슬프게 만든다.
반발심에 애써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차창 밖 펼쳐진 ‘진짜’ 한강을 노려본다.
멋있기에 영상으로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꾹꾹 밟으며.
(합법적인 술과 도박 영역의 이야기는 부끄러워 여기에 쓰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