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옴에 관한 습작
울부짖는 엔진 소리를 내며 날 내려놓고 버스는 북쪽으로 떠났다.
큰 눈이 내린다는 절기답게 세상은 하얗게 덮여있었다.
6년 만에 본 설경은 남아있는 기억보다 더 빛났다.
천천히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뽀득거리는 낯선 소리가 고요한 공기에 퍼졌다.
멀리 교회의 밝은 장식 불빛들이 6년 전쟁이 끝난 세상에 찾아온 평화같이 따듯하게 빛났다.
너덜한 군용 외투에, 군화의 주름에, 더럽혀진 배낭에 그간의 악몽들이 채찍 자국처럼 묻혀 있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한마디와 함께 나누어준 주머니 속 훈장을 쥐자 내게 주는 무의미처럼 차갑게 식어있었다.
흐릿한 기억을 더듬으며 인적이 없는 마을 길을 가로지르자 멀리 그녀가 있는, 아니 있을지 모르는 제과점 굴뚝이 보인다.
전쟁 초기에는 그녀와 안부를 묻는 편지가 오고 갔지만, 상황이 심화되면서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사라진 빈자리는 비현실적 상상과 어두운 걱정이 채워졌다.
맑은 연기가 모락 피는 굴뚝이 가까워질수록 숨소리와 발걸음이 거칠어졌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주위 풍경들은 사라지고 시야가 점처럼 좁아졌다.
입김이 터져 나올 때쯤 노란색 창틀을 지닌 제과점에 도착했다.
하얀 입김을 걷어내자 커다란 유리창 안으로 색색의 케잌들이 보인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케잌들을 보다가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에 초점이 옮겨갔다.
헝클어진 머리와 상처 투성이 얼굴
허름한 모습이 갖가지 케잌들 사이로 덩그러니 놓여있다.
긴 시간 거울을 보지 못해 아직 낯선 나의 눈동자를
노려봄 반 관찰 반으로 응시했다.
살짝 떨리는 동공만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이내 곧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소
그리고 헛웃음을 이어졌다.
나도 모를 헛웃음은 점점 커졌고 배를 움켜잡고
눈물이 날 정도로 크게 웃다 문득 유리창 안 케잌 하나에 눈길이 갔다.
파란색 원형의 케잌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와
분홍색의 글씨로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그 이니셜 글씨는 내게 웃음을 멈추고 제과점 문을 열게 만들었다.
딸랑
작은 벨소리가 나며 따듯하고 향긋한 빵내음이 온몸을 감쌌다.
어서 오세요 인사하는 검은 머리의 점원은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 모습을 한동안 보더니
- 고생하셨어요. 전쟁이 멈춰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는 동의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저기... 밖에 있는 파란 케잌은 직접 만드신 건가요?.
- 아 저 생일케잌이요?. 아니에요. 항상 이맘때면 우리 주인 언니가 만드는 케잌이에요.
나는 떨리는 입술을 느끼며 계속 물었다.
- 주인분은 지금 어디...
- 아 언니는 지금 교회 기도회에 갔어요. 전쟁을 위한 기도회라 이제 끝났는데도 계속 나가네요.
나는 망설이다 케잌을 돌아보며 말했다.
- 괜찮으면 저 케잌을 제가 사고 싶습니다.
- 네?. 저건 이미 이니셜이 새겨져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끄덕이며 말했다.
- 네 괜찮습니다. 근데... 제가 지금 가진 게 없어서...
주머니를 뒤적이는 내게 여점원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돈은 괜찮아요. 참 신기하네요. 언니는 저 케잌을 만들 때마다 이 케잌을 사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주라고 했거든요.
근데 몇 년 동안 저 케잌을 사려고 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에요.
점원은 진열장 문을 열고 케잌을 꺼내며 계속 얘기했다.
- 혹시 이 이니셜 누군지 아세요?. 혹시 본인?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굳게 다물고 케잌만 응시했다.
- 네~네 알겠습니다. 나만 모르면 되는 거지. 케잌은 상자에 넣어드릴까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 괜찮으면 지금 이 케잌을 먹을 수 있을까요?
점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말없이 수납장의 포크를 꺼내 주었다.
점원과 나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 올려진 파란 케잌
떨리는 손으로 포크를 들고 케잌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파란 크림 안에 짙은 흑갈색의 케잌과 크림이 층층이 있었다.
작게 조각을 내 조심스럽게 입에 넣자 크림 사이의 흑갈색 빵 부분이 바스러지며 이내 혀 위에서 달콤한 강이 되어 목구멍으로 흘러내렸다.
오랜 시간 이와 같은 음식을 먹지 못해서인지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무척 세밀하게 느껴졌다.
망각의 베일이 오랫동안 가렸던 오랜 시간 전 그 케잌과 맛이 다시 떠오른 해처럼 확실하게 다가왔다.
나는 쉬지 않고 조각을 내 케잌을 먹었다.
채찍질당한 것같이 상흔이 가득한 온몸과 영혼이 혀에서 시작하는 미각으로 따듯하게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내 북받치는 감정이 솟아 나와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케잌은 씹고 있지만 목이 메어 넘길 수가 없었다.
점원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느끼며, 나는 테이블에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 두 눈을 누르며 감정을 매만졌다.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긴 갈색 머리의 그녀가 문고리를 잡고 서 있었다.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거친 손등으로 두 눈을 훔치고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 여기....
나는 주머니에서 훈장을 꺼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 케잌값으로 줄게 이거 밖에는 안 남았어
그녀 손 위의 얼룩진 훈장은 어느새 따듯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