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턱도 못 가본 사관학교 출신이 쓴 대학 로맨스
손에 그 알감자 어디서 팔아?
후드티 입은 그 아이의 처음 질문이다.
동해바다 엠티에서 돌아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버스에서 점차 숙취가 가라앉으며
공복의 허기짐이 파도처럼 밀려와
해물핫바.어묵바.토네이도감자.핫도그.떡꼬치.호두과자.
쟁쟁한 휴게소 주연상 후보들 중
침착하게 고른 버터가 적당한 알감자였다.
저기 화장실 옆에.
진짜 맛있어 보여서. 고마워.
알감자 이쑤시개로 화장실 쪽을 가리키자
초록색 후드티를 입은 그는 재빨리 걸어 나갔다.
어젯밤 내가 엿본 사람의 웃옷은
술기운에도 분명 저 초록색 후드티였다.
첫 엠티의 마지막 밤이라고
쥐어짜 낸 아쉬움을 술로 달래는 밤이 깊어져
주고받는 잔과 단발성 친분이 쌓여갔다.
결국 옆 방에 조용히 쓰러졌다.
잠에 들어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인기척에 깨니 누군가 이불을 덮어주고 있다.
엄마를 포함해 누구도 해준 적 없는 친절.
의문의 친절자는 베개까지 조심히 받쳐준다.
고마웠지만 불콰한 얼굴이 부끄러워
눈을 감은 채 숨 죽였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일어나 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실눈을 조심 떠보니 의문의 친절자가 옆에 앉아있다.
실눈에 보이는 건 목 아래 초록색 후드티까지다.
곤히 자는척했지만 상황에 점점 온몸이 경직됐다.
조용한 침묵은 잠시 뒤 후드티의 속삭임으로 깨졌다.
ㅡ....없게 생겼네.
초록색 후드티가 조심히 방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없게 생겼다고? 없어 보인다고? 아무리 취했지만?
붉은기가 남은 얼굴 위로 그 속삭임이 아른거려
밤새도록 잠들기 힘든 펜션의 건넛방이었다.
기억의 되감기는 멀리 초록색 후드티가
알감자 뜨겁다고 지르는 소리에 멈춰졌다.
없어 보이게 알감자나 떨어뜨리고 아주.
관광버스에 오르며 혼잣말로 빈정댔지만
남은 알감자를 조심히 들고 오는 후드티를
커튼 사이 창문으로 눈동자가 쫓는다.
엠티의 얼마 후 초록색 후드티는
적당한 호감 인물로 자주 대화에 오르내렸다.
선이 굵진 않지만 깔끔한 인상의 훈남에
수려한 언변은 아니지만 솔직한 말투라는
듣지 않아도 될 증언들이 여기저기서 떠올랐다.
운이 어쨌는지 후드티와 같이 듣는 전공수업들이 많았다.
주로 창가 쪽에 앉는 후드티는
교수님과 창 밖을 반반씩 지켜보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시선의 조심스러운 움직임은
교수를 보면서 중간에 후드티를 보는 건지
후드티를 보면서 중간에 교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사실 알 수 있었다.
후자였다.
후드티는 사실 알감자보다 떡볶이를 더 좋아할지 모른다.
호기심으로 몇 번의 시도 끝에 찾은 그의 SNS에는
단 하나의 게시물만 있었다.
후문에 있는 떡볶이 집 치즈떡볶이 사진이었다.
떡볶이 집 이름과 존맛탱이라는 의외의 해시태그 아래
떡볶이에 미친놈.이라는 격한 댓글들이 이어졌다.
또 다른 유일한 게시물인 프로필 사진.
프로필 사진에는 파란 줄무늬 셔츠에
평소와 달리 환하게 미소 짓는 후드티가 있었다.
나는 가끔 침대에 누워 그 미소가 궁금해지면
과대인 여자 동기의 SNS 페이지에서
두 번째 사진에 이쁘다고 댓글을 남긴
여자 동기를 좋아한다는 남학생의 페이지로 넘어가
남자의 네 번째 사진에 좋아요를 남긴 사람들 중 하나인
후드티의 페이지로 넘어가는 지름길로 뛰어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주 궁금해져
이젠 10초도 걸리지 않는 지름길이다.
얼마의 시간 뒤 중앙도서관 가는 가로수길에서
감정의 점검이 필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초등학생 셋이 장난을 치고 있는 거리를 향해
저 멀리 술꾼으로 유명한 복학생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다.
저러다 부딪힐 수도 있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순간
뒷걸음질하는 아이와 비틀거리는 킥보드의 동선이 겹쳐졌다.
꺄악
내 비명소리에 스치듯
어디선가 뛰어온 후드티가 아이를 안고 가로숲 사이로
구르는 장면이 정지화면으로 차례차례 이어졌다.
복학생 킥 보더는 가던 길을 평화로이 달렸다.
아이들의 외침과 잔나무 사이로
흙 묻은 후드티가 아이와 나타났다.
아이는 멀쩡히 걷는데 반해 후드티는 심하게 절뚝였다.
절뚝이는 후드티 주위를 아이들이 방방 뛰며
고맙다고, 멋있다고, 괜찮냐고 쉴 새 없이 외쳤다.
괜찮지 않은 건 내 심장이었다.
며칠 동안 심장의 알고리즘을 해석할 길이 없어
어릴 때부터 친한 과 선배에게 도움을 구했다.
카페에 앉아 지금까지 일들을 쉴 틈 없이 얘기하고
킥보드 사건에 대한 심장의 자율반응까지 이야기했다.
선배는 나를 가만 지켜보더니 그냥 웃는다.
선배의 웃음과 동시에 폰이 시끄럽게 진동한다.
학과 단톡 방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후드티 사진과 함께
축구공 차는 길거리 게임 때문에 멍청하게 다쳤다고
수많은 ㅋ라는 자음들과 함께 카톡이 올라온다.
마지막엔 근처 종합병원 호실 번호가
과대표의 간결한 문체로 올라온다.
심장이 다시 의문의 알고리즘을 발동하기 시작한다.
갈지 말지 고민은 생략하고 바로 다음 고민
뭘 사가야 할까 단계로 넘어갔다.
과동기인데 꽃은 아니고, 주스는 더더욱 아니지.
단서는 단 두 가지.
하지만 단서가 확연하다.
알감자와 떡볶이.
지하철 역 노상에서 알감자를 파는 할머니가 기억나
설탕 친 알감자를 한 바구니 샀다.
가득 찬 바구니에 할머니가 고맙다고 두 개 더 얹어 주시니
없어 보인다. 는 후드티의 속삭임이 다시금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곧 실없는 웃음으로 번진다.
후드티가 존맛탱이라 칭송했던 후문 떡볶이 집에서
치즈떡볶이를 계산하며 기다리다
이벤트 광고를 발견한다.
존맛탱 해시태그 이벤트.
후드티는 단지 이벤트로 주는 쿨피스가 먹고 싶어서
SNS에 떡볶이를 올린 거였다.
한 손에는 알감자 한 손에는 떡볶이를 들고
조심조심 병원으로 걷는다.
메뉴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봄꽃 거리 풍경이 파란 하늘 바탕에 아름답다.
어렵게 도착한 병원 호실 앞에서
다시 한번 후드티의 이름을 확인하고
손이 없어 등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몸을 돌리자
마주친 후드티의
휘둥그레진
두 눈.
그 날 후드티의 SNS에는
유일했던 치즈떡볶이 사진이 지워지고,
대신
떡볶이와 알감자 사진이
몇 개의 해시태그와 같이 올라왔다.
#떡볶이와알감자
#없게생기긴무슨
#귀엽게생긴애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