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을 마치고.

비행 후 디브리핑을 담다.

by 김대호


윙이이이이이

비명소리를 내던 엔진 소리가 잦아지며
햇빛에 달궈진 헬멧과
땀에 절어 짙어진 두건을 벗는다.

온몸을 휘감은 벨트의 버클들을 풀고
지상요원이 대준 계단으로 내려오면.

한 시간 동안 긴장했던
온몸의 근육들이 스륵 풀리며
걸음이 기우뚱 조심스럽다.

온몸의 피부를 빈틈없이 덮은 땀과
바깥바람이 만나 생긴 차가움이 혈관으로 스민다.

정비사가 건네준 헬멧 가방을 들고
주기장을 터벅 걷는다.

비행하기 전만 해도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비행계획을 웅변하던 후배가
자신감을 비행운과 함께 뿌리고 왔는지
터덜터덜 말없이 뒤를 쫓아온다.

뒤돌아 볼 필요도 없이
시무룩한 발자국 리듬과 소리로
그가 느끼고 있을 깊은 자괴가 전해진다.

이제 막 이륙하는 항공기들의 엔진 소리에
주기장 바닥에 부딪히는 조종화 소리가 묻힌다.

비행이 좋아?

잘 못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후배가 바짝 다가와 되묻는다.

너 비행이 좋냐고.

머뭇거림으로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걸음으로
노란색 활주선 위를 걸으며 말한다.

난 비행이 좋아, 아니 사랑하지.
내 인생의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것들은 비행 때문에 생긴 거 같거든.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내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으며
귀를 기울인다.

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

순간 반짝.
그의 시무룩함에 생기가 한 방울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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