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바보가 됩시다

이수에서 영화 ‘행복한 라짜로’를 보고 쓴.

by 김대호

영화 행복한 라짜로.

국민학교 간판을 초등학교로 바꾸던 시절
나는 방과 후 활동에서 웅변을 배우고 있었다.
어린 나이지만 꽤 열심히 활동했었다.

웅변 담당 선생님은 험악한 인상에
말 안 듣는 아이들의 뺨을 후려치기로 유명한
중년의 선생님이었다.

지역대회 대표를 뽑는 학교 웅변 예선대회에
나는 “우리 모두 바보가 됩시다”라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으로 웅변을 펼쳤다.

제목 그대로 시작되는 웅변은
유관순 열사의 자신을 돌보지 않는 애국과
예수님의 뺨을 맞으면 다른 뺨을 내주라는
이타심의 행동을 배우자는 교훈으로 맺어졌다.

웅변 내내 바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의 악의 없는 웃음이 이어졌다.

한 명의 대표를 선발하는 웅변대회 결과는 2등.
그보다 중요한 건
대회 이후 아이들은 나만 보면
두 손을 하늘로 뻗는 웅변 특유의 동작과 함께
우리 모두 바보가 됩시다-
라고 꺄르르 웃으며 외쳤다.


지금 생각해도 과장된 내 웅변 동작은

중년 선생님에게 뺨을 맞지 않기 위해

열심히 연습한 결과물이었다.

그때 알았다.
아이들에게 각인된 놀림거리가 흐릿해지는 데는
약 한 학기가 소요된다는 사실을.

영화의 라짜로는
현대 범인의 시각으로 보면
한 마디로 착한 바보다.

그에게
오감에서 생각을 거쳐 행동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옳고 그름을 가르는 거름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용을 넘어 착취한다.
하지만 그는 이용과 착취의 고리를
자신의 차례에서 조용히 끊어낸다.

그의 이러한 행적의 결과가 궁금했던
늑대 모습의 존재는
마지막 그의 “다 이룸”을 확인하고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간다.

오직 오르간의 음악만이
본분을 잊은 수녀들을 떠나
성자와 같은 그의 주변에서 천사처럼 맴돈다.

이 영화는 이십 년 만에
내 웅변 내용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웃음 없이 증명해준다.

#영화 #행복한라짜로 #LazzaroFelice
#마술적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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