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기억

흔한 할머니와 손자 이야기.

by 김대호



들꽃 기억.

내가 다녔던 시골 교회의 어르신들은
따로 정한 건 아니었지만
암묵적으로 자신들의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각자의 자리가 얼마나 공고히 정해져 있었느냐면
만약 어느 한 분이 앉던 자리에 앉지 않고 다른 곳에 앉으면
‘저 냥반이 무슨 일이 있나, 오늘은 왜 저기에 앉아?'
라는 속마음으로 다들 힐끔거릴 정도다.

물론 우리 할머니도 할머니만의 자리가 있었다.
왼편 맨 앞에서 두 번째, 끝에서 살짝 떨어진 그 자리.

당시 대통령이나 교황이 우리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온대도
그 자리만은 못 앉았을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먼저 앉아있을 테니까.

시골 교회의 공통 문제 중 하나인 반주자의 부족은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 사정이었다.

어머니는 장기적 안목으로 나를 피아노 학원에 집어넣었고,
기나긴 눈물과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
어찌 됐든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
나는 수요예배의 반주자로 교회 피아노에 앉아있었다.

우리 교회의 피아노는 강단의 왼편에 있었다.
나는 반주를 하다 말씀 듣는 시간이 되면
피아노에서 조용히 일어나 할머니의 그 자리 옆에 앉았다.

교회에서 손자가 피아노 반주를 하면
'아이고 내 새끼 오늘도 참 잘 치네' 하는 할머님들도 있겠지마는,
우리 할머니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시는
참 조용한 분이었다.

다만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면
본인이 걸쳤던 숄을 말없이 내 허벅지에 감싸 주시던가,
말씀 듣는 도중 성경을 읽을 때면
본인이 평생 읽어온 듯한 투박한 글씨체의 세로 내림 방식의 성경을
손으로 일일이 짚어주시는 정도였다.

그런 분이었다.

하지만 어렸던 나도 알 수 있었다.
피아노 반주를 하는 손자를 둔 할머니의 자랑스러움을.

다른 할머님들이 손자 칭찬을 그분에게 할 때면
딱히 큰 내색은 안 하셨지만
속은 활짝 웃고 계시는 분이라는 걸.

교회의 반주자는 온전히 신을 위해서 반주를 해야 하지만
수요예배의 피아노 반주를 하던 나는
8할은 신을 위해
그리고
남은 2할은 우리 할머니를 위해 치지 않았었나 생각해본다.

이 2할의 노력과 할머니 옆자리에 앉은 시간은
내 인생의 큰 자랑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계속되진 않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마칠 때쯤
교회의 맨 앞에서 두 번째, 끝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는
빈자리가 되었다.

내가 생도가 되고, 장교가 되고, 조종사가 될 때마다 찍은 가족사진에서
비어있는 그분의 자리를 보면
마땅히 내가 가져야 할 몫의 기쁨을 빼앗긴 듯했다.

시간은 중력처럼 일정히 쉬지 않고 흘러
얼마 전 추석에 고모들과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선산으로 갔다.

가는 도중 꽃을 사 올걸 그랬다는 고모들의 말에
가는 길가에 핀 들꽃들을 조용히 꺾어 모았다.

무덤 앞에 둘러 서 기도를 마치고
작게 모은 들꽃 다발을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
다들 들꽃 다발을 보며 묻혔던 기억의 먼지를 닦았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할머니는 말없이 조용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안다.
어디선가 꽃을 보며
자랑스럽게 활짝 미소 짓고 계실 거라고.

#저잘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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