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의 관계 개선
해변에 갔다.
코로나의 긍정적 상황을 대변하듯
평소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길 위에
길다랗게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금세 불타올랐다가 식어버린다는
우리가 인정하는 우리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두 달 넘게 집 안에서 서로 다독이며 잘 참았기에
줄지어 서 있는 차량들에 화를 낼 순 없다.
점점이 심기는 빗방울과 우직한 와이퍼의 기싸움을 지켜보며
멜론 좋아요를 누른 취향 음악들을 들으며
앞차의 빨간 불빛을 길잡이 삼아 브레이크와 악셀 페달을 번갈아 밟으며
에어컨 바람에 섞인 비릿한 섬의 체취를 맡으며
두 시간 반을 기다리니 상주 은모래 해변에 닿았다.
트렁크를 열어 돗자리와 쿠션을 꺼내 들고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를 사서 모래사장으로 걸었다.
주말 간 남쪽 먼바다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답게
해변은 낮게 내려앉은 안개가 이불처럼 덮었다.
파도와 해송 사이 적당한 위치에 돗자리를 펴고
쿠션에 적당히 기대 커피를 마시며 해변을 구경했다.
멀리 남쪽 바다에서 회색 구름과 안개를 몰고 온 바람은
해송과 안부를 나눈 후 멋진 경치와 추억을 지녀 내가 애정 하는
산 위 산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꼬맹이들이 작은 몸집에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열정으로
모래성 쌓기, 모래에 물 붓기, 모래 파기, 모래 덮기 같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일들을 쉬지 않으며 꺄꺄 소리치고 있다.
바다는 꼬맹이들 못지않게 성실히
적당한 날숨과 들숨의 파도로
모래와 작은 자갈들을 어루만지며 소리를 내고 있다.
바다는 저렇게 일정한 들숨과 날숨 같은 파도를 내지만,
가끔 재채기 같이 큰 파도를 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열 살보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놀러 간 동해바다에서
해변에서 놀다 재채기 같이 큰 파도에 휩쓸린 적이 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바닷가에 누워 있었고
가족들이 주위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가족들의 목격담이
커다란 파도가 나를 휩쓸고 간 후
다시 큰 파도가 쳐서 천만다행으로 나를 바닷가에 밀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 놀란 어린 마음엔
바다가 파도로 으르렁 거리는 흉폭한 존재로 느껴졌고,
바다에 대한 부정의 시각이 흐려져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까지는
이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평화로운 바다를 보고 있자니
그 당시 바다가 재채기를 못 참았다가
파도에 휩쓸려 온 꼬마에 놀라
다시 황급하게 두 손으로 바닷가로 밀은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바다와 화해한 이후 해수욕도 즐기고,
스킨스쿠버도 배우며 신비로운 바닷속 깊은 마음도 보고,
이렇게 가끔 생각나면 찾아와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됐으니
꽤 성공적인 관계 개선이 아닌가 싶다.
해가 질 시간 즈음 예보된 빗방울이 시작돼
편의점 우산을 펴고 바다에 작별 인사를 하곤
차를 북쪽으로 출발시켰다.
바다는 침착한 성격답게
쉬이 변하지 않는 크기의 파도로 조용한 마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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