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내 도둑질은 9살 때 끝났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내 도둑질은 9살 때 시작해서
그 날로 끝이 났다.
세 평도 안 되는 학교 구석 매점
수업시간엔 작은 티브이 소리만 들리다
쉬는 시간 종소리가 울리면
당분에 굶주린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느리게 동전을 세는 할머니 한 분이
맹렬히 뻗어대는 아이들의 손들을
홀로 상대하셨다.
나대는 아이들 틈바구니 속
9살의 나는 냉장고 앞에 서서
줄지어 서 있는 요구르트를 지켜보고 있었다.
고요한 고민의 끝.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한 손으로 침착히 요구르트를 들곤
매점 문으로 성큼 걸어 나왔다.
도둑질은 그 악명만큼 대단하지 않았다.
유려하고 간단했다.
교실에서 요구르트를 마시며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도둑질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
망각이라는 은혜를 받지 못하는 기억의 잔상은
십수 년이 흐른 오늘도
냉장고 앞에 묵묵히 서 있던 나를
커튼콜처럼 잡념의 무대 위로 다시 불러낸다.
여러 경험 중에 어느 것을 기억의 페이지에
깊숙이 남길지 선택한다는 생각은
사람의 한계를 과소평가하는
오만한 생각이다.
꼭 기억해야지 하는 중요한 일들도
몇 번의 계절로 증발되고,
쉬이 얻은 요구르트의 달콤함은
쓰디쓴 극약처럼 뇌와 시간 사이 어딘가에 꽂힌다.
호기심과 달콤함 앞에 무력했던
냉장고 앞의 소년은 지금도
매점에서의 기억의 끝장을 알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