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마치는 여행에서.

픽션입니다.

by 김대호



삶은 아름다웠었다.

왕관이란 이름의 질병이 퍼지기 전까지
삶은 아름다웠다.

주식으로 6년간 모은 돈을 모두 잃은 것도 모자라
들어본 적도 없는 액수가 마이너스로 찍혔다.
소문이 퍼진 회사를 자의 반 타의 두배반으로 사직 후 걸어 나오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연인의 카톡이 울렸다.

죽고 싶어 먹은 술은 아침마다
극심한 숙취로 비루한 삶을 깨웠다.

초점 없는 손가락으로 검색창에
‘죽고 싶다’ 라 적으니, 번뜩 나타난
“삶을 마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모임의 게시글엔
날짜와 버스시간, 종착지만 적혀있었고
조회 숫자만이 읽은 사람들의 흔적을 대신했다.

몇 번의 숙취 끝에 게시글에 적힌 버스표를 예매했고,
정해진 시간인 심야에 맞춰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에 오르니 딱 봐도 초점 없는 사람 셋이
맨 뒤 의자에 한 칸씩 떨어져 앉아 있다.

눈을 맞추니 돌아오는 무언의 끄덕임.

바닷가 도시로 떠나는 버스에서 창 밖을 보니
가로등 불빛에 물든 주황빛 녹다만 눈들이
내 삶처럼 지저분하다.

수천 개의 가로등을 지나치며
가로등 하나마다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른다.
파편들이 따끔한지
가로등이 사라져 버려 검은 창문 위로
볼에 흐르는 눈물이 보인다.

터미널에 내려 택시로 도착한 해뜨기 직전 바닷가
비릿한 냄새도 가라앉아 파도 소리만 가득하다.

각자 자리에서 바닷가를 바라보지만
누구 하나 쪽빛에 퍼져 오르는 새벽빛에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거나 하진 않는다.

중년 남성 회원이 사 온 소주와 새우깡을 중심으로
모여 앉아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읊는다.

새우깡을 사 온 중년 남성은 헬멧을 만드는 중소기업 사장님.
공격적인 성장이 도리어 칼날로 돌아와 부도가 터졌다.

핏기 없는 여성은 결혼 상대에게 과거 연인과의 동거 사실을 말했다가 즉시 파혼당했다.

나머지 한 명은 신분이 밝혀진 동영상 구매자...

이야기를 들으며 바다에 걸린 해처럼
조용히 떠오르는 생각

나는 상대적으로 행복한 삶이었다는 반전과.
그리고 저 동영상을 구매한 쓰레기보단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나한테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

내 차례에서 겪었던 일들을 대충 얼버무리고 조용해지자
다들 아무 말 없이 술만 들이켜다
먼저랄 것 없이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각자 모래를 털며 준비된 여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조용히
조용히 뒤로 빠지다가,
동영상 구매자가 뒤돌아보는 순간.

죽기 싫어 달리는 쥐처럼
태양 쪽으로 뒤돌아 뛰어나간다.

어이없이 바라보는 세 명의 시선을 뒤로 한채
밀려오는 파도와 받아주는 모래를
번갈아 밟으며 반대쪽으로 뛰어나간다.

그래.
내가 잠시 잊었었던 거다.

삶은 살아내야 아름다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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